자는 문서(文瑞). 비안현감 삼근(三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판관 계권(係權)이고, 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영수(永銖)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현령 박(博)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3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군자감직장을 거쳐 성균관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경기도사·헌납·이조정랑·병조정랑·예조정랑·제용감첨정·평양서윤·시강원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전적 때 관북지방에 가뭄과 메뚜기 피해로 기근이 들어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삼남(三南)의 곡식을 조운할 마땅한 사람을 고르지 못할 때 낮은 관직으로 뽑혀 명성과 경륜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평양서윤이었던 1523년 관서지방에 전염병이 만연하자, 둔전책(屯田策)을 건의하고 농업에 힘쓰고 민식(民食 : 백성들을 위한 식량)과 창름(倉? : 관곡을 쌓아두는 창고)을 넉넉히 하며 군졸에게 잡다한 세(稅)를 없애주어 백성의 주거를 편안하게 하였다.
그의 후손이 특히 번창하여 ‘淸遠樓의 子孫’, ‘壯洞金氏’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금관자(金貫子) 서 말이 나온 집안’은, 바로 번(?)의 후예(後裔)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의 후예들 중에서도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자손들의 출사(出仕벼슬하여 관아에 나감)가 두드러진다.
대충 세어봐도 왕비가 3, 임금 사위가 2, 정승이 15, 판서 51, 문원(文苑홍문관예문관)52명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외직(外職)으로는 관찰사(觀察使지방장관)46, 유수(留守특수외관직)31명이나 배출이되었다. 이 중에는 한 사람이 내외직이 서로 겹쳐진 겨우가 있었음을 밝힌다.
어둑이 묘정배향(廟庭配享종묘제사)이 6, 원사배향(院祀配享서원배향)이 15명이나 되고 시호(諡號죽은 뒤 내리는 이름)를 받은 이가 49명이나 된다. 이 외내직이나 증직(贈職죽은 뒤 주는 벼슬)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조순 : 영안부원군 : 순조국구(순원숙황후 : 순조비)
              문근 : 영은부원군 : 철종국구(철인장황후 : 철종비)
              조근 : 영흥부원군 : 헌종국구(효현성황후 : 헌종비)
              현근 : 순조부마(제 1녀)
              병주 : 순조부마(제 2녀)

              영의정 : 수항, 수홍, 창집, 좌근, 흥근, 병시, 병학, 병국(8명)
              좌의정 : 상헌, 이소, 홍근, 병덕(4명)
              우의정 : 상용, 이교, 달순(3명)

              상헌(효종묘), 수항(현종묘), 창집(영조묘), 이교(순조묘), 조순(정조묘), 수근(철종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