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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尙容(1561∼1637)의
遺稿이다.
詩와
文을
上下冊으로
나누었고
序,
神道碑銘,
跋 이
있다.
金尙憲의
跋과
申翊聖의
序에서
出刊의
經緯를
大略
알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저자의
동생인
金尙憲이,
跋을
쓴 1639년(仁祖
17)에
遺稿를
모아
公의
두아들
光煥,
光炫이
번갈아
申翊聖에게
序를
부탁하여
1640년에
出刊한것
같다.
金尙容의
字는
景擇,
自號는
仙源·楓溪.
安東人으로
掌令
金번의
曾孫이다.
1582년(宣祖
15) 司馬에
中하고
1590년에
及第하여
檢閱을
拜했다.
兵刑佐郞,
正言,
司書,
修撰,
應敎를 歷任하여
1598년
承旨에
올랐다.
1601년에
宮闕이
너무
엄해
輿論을
上疏할
수 없는 것을
大諫하여
왕의
비위를
상케하여
定州牧使에
左遷되고
3년후에
官을
물러났다.
光海朝에
都承旨,
大司憲을
거쳐
刑曹判書를
拜했다.
1632년(仁祖
10)
右議政을
拜하였다.
丙子胡亂에
廟舍를
따라
江都에
들어갔다가
이곳에
위험이
닥치자,
초門에
火藥을
쌓고
친히
점화하여
屍體를
남기지
않고
殉國하였다.
爲人이
惇厚謙愼하고,
容貌和粹하여
君子의
풍도가
있었다.
山水를
좋아하여
晩年
楓磎에
齋를
지었다.
書는
各體를
잘 하였다.
동생
尙憲과
함께
文章은
節義로써
著名하다.
遺稿는
大部分이
詩로
散文은
極少하다.
卷首에
申翊聖의
序,
金尙憲의
碑銘(幷序)과
祭式遺訓이
있고,
卷末에
仙源遺稿補遺,
金尙憲의
跋이
있다.
上卷:五言絶句(新昌院樓上
이하
22수),
七言絶句(次趙生韻四首
이하
240首),
五言律詩(次趙生韻三首
이하
97首),
五言排律(原州叔主挽
이하
4首).
下卷:七言長律(黔毛浦
이하
166首),
五言古詩(梨津
이하
28首),
七言古詩(相思曲
이하
1首),
雜著(慶尙道觀察使尹承勳敎書,
葬坤兄哀詞,
蒼龍校銘,
烏竹杖銘,
座右銘,
宗廟祈雨祭文二首,
南郊賜祭戰亡將士祭文,
祭女嬪南司禦文,
仙源居士自述墓銘,
疏箚
7 등).
仙源遺稿補遺는
記夢說이다.
詩 607首는
遺稿의
8割
以上을
占하며
七言絶句,
七言長律,
五言律詩가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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