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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시조 태사공의 대종손이다. 고조부(高祖父)는 정의대부판례빈시사(正義大夫判禮賓寺事)를 지낸 김근중(金斤重), 증조부(曾祖父)는 전농정(典農正)을 지냈으며 영의정 권진(權軫)의 장인인 김득우(金得雨), 조부(祖父)는 봉례랑(奉禮郞)을 지냈으며 정몽주 이색 이인복 등과 신돈의 죄를 탄핵한 김혁(金革)이며, 부(父)는 비안현감(比安縣監)을 지내고 안동 소산리(素山里)에 입향한 김삼근(金三近)이다.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정헌공(定獻公)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은 그의 아우이다. 세종 때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가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을 지냈으며, 세조 4년(1458) 무인년에 졸하였고 묘소는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역골에 있다.
판관공(判官公) 휘(諱) 계권(係權) 묘소(墓所)
배위 예천권씨(醴泉權氏)는 태종 기축년에 태어나, 연산군 병진년 겨울 향년 88세로 졸하였다. 대제학(大提學) 제평공(齊平公) 권맹손(權孟孫:1390-1456)의 딸이고, 할아버지는 목사(牧使) 상(詳)이며, 증조는 부사(府使) 군보(君保)이고, 외조는 부사(府使) 남적(南績)으로 본(本)은 의령(宜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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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에 5남 6녀를 두었는데, 1남은 세조조국사(世祖朝國師)인 학조대사(學祖大師), 2남은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영전(永銓), 3남은 진사(進士) 영균(永鈞), 4남은 문과수원부사(文科水原府使) 영추(永錘), 5남은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영수(永銖)이다. 이 가운데서 왕비 3명, 정승 15명, 종묘배향 6명 등을 배출한 5남 영수의 후손이 가장 번창하였다.
안동김씨는 본관(本貫)이 같으면서도 뿌리가 다른 구안동김씨(舊安東金氏)와 신안동김씨(新安東金氏)로 나뉘는데, 신안동김씨를 흔히 장동김씨(壯洞金氏)라고도 한다(이에 대비하여 구안동김씨를 상락김씨라고도 한다). 이는 김계권(金係權)-김영수(金永銖)-김영(金瑛)·김번(金번)·김순(金珣)의 삼대에 걸쳐 터 잡은 장동(壯洞 : 지금의 서울 청와대 일대)에 지속적으로 세거한 후손들이 크게 번성한 데서 기인한다.
김계권의 묘는 학조대사가 터를 잡았으며, 일찍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 이곳의 형국은 푸른 개구리밥이 물 위에 떠 있는 창평부수형(蒼萍浮水形)이라 한다. 묘의 주산은 가일 마을 뒤에 있는 정산(井山)인데, 백두대간의 옥돌봉에서 한 지맥이 뻗어 문수산, 천둥산, 학가산, 보문산, 대봉산을 거쳐 하회의 주산인 화산(花山)을 기봉하기 위해 행룡하는 용에서 남으로 한 지맥이 뻗어 기봉한 산이라 한다. 그의 묘는 비룡입수(飛龍入首)하는 내룡(內龍)이 크게 기운을 모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혈장(穴場)이 뚜렷하고 단정하며 힘이 넘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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