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아랫마(마을)의 서쪽 산 계곡 깊숙이 자리잡은 만휴정(晩休亭.경북도문화재자료 제173호)은 그 주변 경관과 그윽한 정취가 어울려 한폭의 동양화와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계명산을 뒤로 하고 금학산, 황학산이 첩첩이 에워싸고 있는 만휴정 계곡은 묵계동천(默溪洞天)으로 불리는 절경이기도 하다.

연산군의 폭정에 지친 보백당 김계행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설못(안동시 풍산읍 소산2리)에 조그마한 정자(보백당)를 짓고 지내다 더욱 한적한 곳을 찾아 이곳에 터를 잡았다. 1500년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세월에 닳은듯한 흰색의 너럭바위가 길게 계곡을 형성하고, 그 위로 쉴 새 없이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그 깊은 계곡은 또 바위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계곡은 만휴정 앞에 이르러 더욱 깊은 웅덩이를 잇따라 만들고 100여m가 하나의 돌로 형성돼 있다.

황학산의 골짜기에서 흘러 내리던 계곡물은 만휴정 위쪽에 있는 24m 높이의 거대한 송암(松巖)폭포로 떨어져 용추(龍湫)와 호담(壺潭)이라 부르는 두개의 큰 웅덩이를 이룬다.

큰 벼루처럼 생긴 아래쪽 웅덩이의 벽처럼 둘러진 바위에는 '보백당 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라는 큰 글씨가 행서체로 새겨져 있다. 용추와 호담 사이의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만휴정에 이른다.

김계행이 일찍이 '내 집에 보물이란 없다. 있다면 오로지 맑고 깨끗함 뿐이리(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唯淸白)'라는 시를 짓고 이 시에서 두 글자를 따, 설못의 정자 이름과 자신의 호로 삼았던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정자는 검소하면서도 단아한 모습이다.

정면을 누마루 형식으로 개방하여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고 양쪽에는 올돌방을 두어 학문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선생은 조선초 문신으로 청백리로 뽑혔던 분으로 50세 넘어 과거에 합격한 후 대사성, 대사간, 홍문관부제학 등 여러 관직을 지내다 연산군 폭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설못(현 소산 2리)가에 조그마한 정자(보백당)를 짓고 독서와 사색에 잠겼으나 길가인 관계로 한적하지 못하자 더욱 조용한 장소를 갖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얻어진 것이 오늘날의 '만휴정(晩休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