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계서원은 보백당 김계행과 응계(凝溪) 옥고(玉沽:1382∼1436)의 위패를 봉향하는 서원으로 조선 숙종 13년인 1687년에 사림들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보백당과 응계는 조선조 초기의 청렴 강직한 선비와 청백리의 전형으로 칭송받은 인물들이다. 보백당의 위패는 그의 맑고 깨끗한 삶의 자세를 흠모하는 후대의 선비들에 의해 조선조 숙종 32년인 1706년에 묘우인 청덕사(淸德祀)에 응계와 같이 병향되고 있다.

묵계서원은 고종6년(1869)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25년에 강당과 문루인 읍청루와 진덕문, 동재 건물 등을 복원하였다. 그러다가 1998년 5월 17일에 사림들에 의해 현 위치에 복원되어 위 두 분의 위패를 다시 모시게 된 것이다. 이는 현재 경상북도 지방 민속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속 건물로 사당은 청덕사(淸德祀), 강당은 입교당(入敎堂), 누는 읍청루( 淸樓), 재는 극기재(克己齋)이며 문은 진덕문(進德門)이다. 또한 서원 남쪽 언덕에는 보백당의 신도비와 비각도 건립되었다.
강당은 전면 5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 기와건물로 가운데 3간을 마루로 꾸미고 좌우에 온돌을 들인 일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서원 좌측에는 이를 관리하는 정면6간, 측면 5간의 '□'자형 주사가 있다.

서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마을 한가운데에 묵계 종택이 있다. 종택 내에는 보백당이라 편액한 구택(舊宅)이 있는데, 현재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제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종가에는 선생에게 내려진 교지와 유품들이 잘 보관되어 있다.


묵계종택은 서원에서 멀지 않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침과 사랑채인 보백당,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ㅁ자형의 팔작지붕 집으로, 보존 상태가 좋다. 보백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두리기둥을 사용하였고, 우물마루를 깐 4칸 대청과 2칸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택내의 보백당은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이며, 대청의 왼쪽 측면과 뒷벽에는 판벽에 문얼굴을 내어 미세기 창을 달았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집으로, 앞쪽에는 삼문이 있고 낮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마을 뒤에 우뚝 솟아 있는 계명산(鷄鳴山)을 중심으로 하여 마을 앞으로는 금학산(金鶴山)과 황학산(黃鶴山)이 겹겹이 마을을 에워 싸여 있다. 깊은 골짜기와 맑은 물이 조화된 묵계의 전경은 신비스럽고도 아늑하다.
보백당 김계행이 70세 되던 해인 1500년(연산 6년)에 벼슬에서 물러 나와 우거하면서부터 이곳을 묵계(默溪)라 칭했다고 한다. 이는 보백당이 송암폭포(松巖暴布)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짓고 정자 앞에 흘러가는 물을 보고 묵계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는데 보백당 사후에 묵계서원이 건립되면서부터 이 마을 전체 이름이 묵계로 불리워진 것이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