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중심부인 북문동에 자리잡고 있는 태사묘는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김선평, 권행, 장길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퇴치한 삼태사는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高麗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 휘(諱) 김선평(金宣平), 휘 권행(權幸), 휘 장정필(張貞弼), 즉 안동김·권·장씨의 시조 3분을 말하는데 태사묘에서는 매년 춘추중월중정일(春秋仲月中丁日)에 향사(享祀)를 거행한다.

고려 성종 2년 983년에 안동부사내(府司內)에 삼공신묘를 창건하였고 삼공신위판(三功臣位版)은 부사에서 객사로 옮겨 모시다가 중종 37년(1542년) 강릉인 김광철이 안동 부사로 재임시 처음으로 묘우(廟宇)를 이 자리에 세웠다.당시(當時) 정초, 단오, 추석, 동지의 사절사를 봉행하였으나 1585년 당시 도유사(道有司) 송암 권호문의 주창으로 춘추향사(春秋享祀)키로 결정, 지금에 이르며 1608년 11월 유사 권중상, 권함, 김태, 장흥효께서 삼공신 위판을 개제주(改題主)하였으며 권오(權晤)가 쓰셨다.

임진란때에는 묘직(墓直)인 안금이(安金伊)가 후손도 하지 못한 삼태사 위판을 길안면 국란 계곡 깊은 동굴에 모시고 3년이나 봉안(奉安)하다가 평란(平亂)후 환안(還安)하니 나라에서 그 뜻이 갸륵하다 하여 첨지(僉知)의 벼슬을 내리고 경내 일각에 안묘당(安廟堂)을 세우고 봉안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경인란시에는 폭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별유사(別有司) 장봉섭이 삼태사 위판을 성곡동 장씨 광풍정(光風亭)에  이안(移安)하였다가 익년 8월13일에 능동 안동권씨 재사 보판각으로 이안하고 매년 춘추 향예를 봉행하여 오다가 1953년에 3성 후손이 중건 위원회를 발족하여 후손들의 성금으로 새로 중건하니 묘우 숭보당(崇報堂), 전사청(典祀廳), 동서재(東西齋), 안묘당(安廟堂), 주사(廚舍) 공사(工事)를 마치고 1958년 9월에 삼태사공 위판을 환안봉안(還安奉安)하고 고유(告由)하였다.
그 후 1963년에 보물각(寶物閣), 경모루(景慕樓)도 이어 준공하였다.

중건 후 수 십여년 간에 퇴락으로 삼성후손들이 걱정하여 오던 중 도유사(道有司) 김중한이 입재(入齎)하여 묘우 및 경내 건물 보수관계를 태사묘 관리위원들과 협의하여 관계기관과 절충한 결과 국가 보조금으로 1993년부터 3년에 걸쳐 묘우를 비롯하여 경내건물과 담장을 깨끗이 일신하였다.

이곳에는 부속건물로 보물각과 숭보당, 동서재, 경모루, 안묘당, 차전각 등이 있는데, 보물각에는 삼공신 중 누구의 것인지 분별할 수는 없지만 붉은 잔(朱漆托盞) 1개, 무늬비단(古絹布[花絹]) 1편, 비단(高絹布[無]) 6편, 관(冠) 1개, 가죽신 1켤레, 부채(布扇) 1개, 구리도장(銅印) 2개, 놋쇠합 1개, 옥관자(玉貫子) 2개, 허리띠(革帶) 4벌, 교지(敎旨) 1매, 동수저(銅匙箸) 1벌 등, 총 12종류에 22점(보물 제451호)이 잘 보존되어 있다. 숭보당 안에는 퇴계 선생이 지은 중건기문 등이 걸려있다. 묘정(廟廷)에는 삼공신 비가 세워져 있다.

안동 태사묘 사이트(http://3shrine.andong.com)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