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계이황(退溪李滉)은 기록 -  

安東의 府됨이 麗初부터로 부사(府司:관아)에 묘(廟:제사지내는 곳)가 있어 고려 태조공신 三人을 봉사(封祀:제사지냄)하니 金公宣平  權公幸  張公貞弼이다. 府는 원래 신라의 고창군으로 三公은 신라 사람이다. 태조가 견훤을 토벌할 때에 삼공이 군(郡)으로써 태조를 도와 병산(甁山:안동와룡)의 대첩(大捷)이 있으매 의성(義聲)이 크게 떨치고 일경(一境)이 보전하며 왕업을 이루니 이 려씨(麗氏:왕건)에게는 큰 공이 있고 군민에게는 큰 덕이 있다 할 것이라. 려조(麗祖:왕건)가 그 공(功)을 상(償)주어 대광(大匡)과 대상(大相)의 벼슬을 주고 또 군을 부(府)로 승격(陞格)함이 마땅한 것이다. 부민(府民)이 그 덕을 생각하여 묘를 세워 제사(祭祀)한지 지금 칠백팔십년에 변함이 없다.  그러나 려사(麗史)에 이미 삼공(三公)을 위하여 입전(入傳)하지 않고 삼공의 사적이 사지(史識)보첩(譜牒)에 나타난 것이 매우 소략(疎略)하여 혹 이동(異同)이 있다.

사씨(史氏) 이르기를 金公이 고창 城主가 되었으니 항려(降麗)할 꾀는  마땅기 金公에게서 나와야  할 것이나 도리어 權公에게서 나왔다 하고 승람(勝覽)에 연혁(沿革)을 적음에는 이르기를 三公이 모두 군인(郡人)으로서 태조를 도와 공이 있다고 범칭(汎稱)하고 인물을 적음에는 이르기를 權公이 고창을 지키어 항려(降麗)할 것을 제창(提倡)하였다 하였으니 그 같지 않음이 이와 같다. 내 일찍이 두어 설(說)을 모아 반복하여 생각하건데 삼공이 모두 군인(郡人:안동사람)으로 城主된 이는 金公이요 항려(降麗)할 것을 제창(提倡)한 이는 權公이라. 두사람과 張公이 싸움을 도운 공이 있으므로 麗王이 이에 투항(投降)을 상줌에 사성(賜姓)하여 權公을 기리고 전공을 논함에는 종중(從重)하여 김공을 으뜸으로 하고 공신의 호(號)를 줌에는 세사람이 같은 것이라. 부지(府地:안동땅)에 토전(土田)을 주어 그 소입(所入)으로 세식(世食)하게 한 것이다. 가정신유(嘉靖辛酉)에 퇴계이황(退溪李滉)은 기록하다.
삼중대광(三重大匡) 김선평(金宣平)의 묘는 안동부서고태장(安東府西古台庄:서후면태장리)에 있으니 부(府)로부터 삼십리 거리다.

  

    의성(義聲) - 떳떳한 명성
    입전(入傳) - 후세를 위해 역사책, 비석등에 기록하는 일
    사지(史識) - 역사책에 기록한 것
    보첩(譜牒) - 족보
    소략(疎略) - 엉성하고 간략함
    이동(異同) - 다른 것
    사씨(史氏) - 역사가를 말함
    항려(降麗) - 고려에 항복하는 것
    승람(勝覽) - 동국여지승람을 말함
                        (노사신 편찬)
    범칭(汎稱) - 널리 일컬어지고 있음

    사성(賜姓) - 임금이 성을 줌
    종중(從重) - 무거운 정도를 따라 처리함
    소입(所入) - 수입

    세식(世食) - 대대로 먹고 살 수 있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