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당 : 김경진
             (안동김씨 화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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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비고]에서 "태사공의 墓는 안동시 서후면 태장동 천등산 왼쪽 기슭에 定座하여 있으되 失展(잃어버림)되었다가 조선인조4년 (서기1624년)에 {府西十餘里天燈山左麓有峰曰台莊}이라고 기록된 여지승람에 의거하여 墓壇을 설치하였다. 그 상세한 전말은 [太師墓壇記]와 [神道碑]에 기록되어있다. "라고 한다. <{고창비고}에서>

 


  始祖(시조) 태사공의 무덤이 墓所(묘소)가 아니고 墓壇(묘단)인 이유는 {神道碑銘 序}에서 밝인바와 같이
  失展되어 오다가 조선인조4년(서기1626년) 墓壇을 설치하게 되었는데 , 그 내력이 {墓壇記}기록되어 있다.

< {墓壇記}참고>   

 


 1. 고려 때는 오랜 外侵(외침:몽고원나라)으로 백성들이 戰亂에 시달리며 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조상들의
     묘소를 省墓할 여가가 없어서 墓所를 잃어버렸을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2. 당시에는 문맹자가 많아 世系의 기록도 소홀했을 것이고 (처음족보 숭정갑신후 76년 기해 18대손 창흡
     기록) 또, 기록해 두었다 하더라도 戰亂에 시달리다보니 기록마저 잃어버릴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3. 조선 태조 이성계가 易姓革命으로 朝鮮을 개국하여 백성들에게 고려조를 금기시 했고, 고려조의 녹을
     받고 충성해 도던 그 조상들의 묘소의 참배나 성묘까지 엄하게 막았을 것이다.
 4. 족보의 시작은 조선 중기에 와서 시작된 것이기에 수백년의 歲月이 흐르다보니 조상에 대한 기록이나
    기억들이 윗대로 갈수록 확실치 못하거나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상의 원인들로 인해 어느 성씨를 막론하고 교려조 이상의 조상을 잃지 않음이 없는 실정이다.

<안동김씨 안동화수회 {안동김씨 뿌리}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