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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 때는
오랜
外侵(외침:몽고원나라)으로
백성들이 戰亂에
시달리며
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조상들의 묘소를
省墓할 여가가 없어서
墓所를 잃어버렸을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2. 당시에는
문맹자가
많아 世系의 기록도
소홀했을
것이고 (처음족보
숭정갑신후 76년
기해 18대손 창흡
기록)
또, 기록해 두었다
하더라도 戰亂에
시달리다보니 기록마저
잃어버릴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3. 조선 태조
이성계가 易姓革命으로
朝鮮을 개국하여
백성들에게 고려조를
금기시 했고, 고려조의
녹을 받고
충성해 도던 그 조상들의
묘소의 참배나 성묘까지
엄하게 막았을
것이다. 4.
족보의 시작은 조선
중기에 와서 시작된
것이기에 수백년의
歲月이 흐르다보니
조상에 대한 기록이나
기억들이
윗대로 갈수록 확실치
못하거나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상의
원인들로 인해 어느
성씨를 막론하고
교려조 이상의 조상을
잃지 않음이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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