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30 17:36:23 조회 : 4675         
시중공파 복성에 대한 이야기 이름 : 金增鎰
안녕하세요? 31세손 增溢입니다.
게시판을 읽다보니 시중공파의 복성에관한 글이 있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저도 어릴적 할아버님과 집안 어른들이 하신 말씀들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선조 어르신중에 중국 황제 앞에서 우리나라의 자존심과 국익을 위한 주장을 펼치고 우리나라로 돌아오자 고려조인지 조선조인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왕에게 이 어르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왕도 국익을 위해서 한 말이기에 차마 죽일수가 없어서 "진"이라는 성을 내려서 몰래 살려주고 차후에 복성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얘기와 조선후기 임금(순종으로 기억)의 행찻길에 선조 어르신들이 그 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복성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30여년전에 들었던 얘기라 정확하지 않습니다. 시중공파의 복성에 관한 자세한 얘기를 아시는 문중 어른이 계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196번의 글인데, 122번에 자세한 애기가 있다고 했는데 찾아보니 없어서 위와 같이 질문을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30세손 시중공파 亢年입니다.
저는 현재 객지 나와 살고 있고 제가 알고 있기로는 윗 조상은10대 이상 음성에서 살았습니다.부친은 奭자 顯자 쓰시고 윗조상의 함자는 -尙東-左漢-相鎭-保均-光益-興禮......
시중공파가 순조때 500년만에 복성허락을 받았다는데 그 부분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그리고 언제부터 음성에서 살았는지.....

 04-10-01 09:51   
안녕하세요?
29세손 정현입니다. 님의 질문하신 복성내용은 본 게시판 122번에 실려있읍니다.그리고 선조님의 음성거주시기는 14세손이신 휘.유지(세종13년(1431년)-세조12년(1467년) 님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거주하고있으며 후손들은서울.청주.구리.남양주.광주.하남.고흥에살고있읍니다. 좋은답글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수고하세요.
 김정현 04-12-31 10:25   
안녕하세요
님의질문은 86번(안녕하세요)에 답글을올렸읍니다
 김주동 05-01-23 18:47   
"시중공사성실록" 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侍中公賜姓實錄(시중공사성실록)
시중공의 휘는 鶴(학)이요 자는 雲擧(운거)이고 호는 寒齋(한재)인데 태사공 휘 宣平(선평)의 후예로서 고려 忠烈王(충렬왕)때 벼슬이 左侍中(좌시중)에 이르다 그때 使臣(사신)으로 元(원)나라에 가시게 되었는데 공의 자리 서열을 오랑캐 자리에다 정함에 공께서는 분연히 물리치고 말하기를 臣(신)의 나라는 衣裳人(의상인)인데 어찌 오랑캐 대열에 들게 하느냐고 따지고 元帝(원제)도 역시 오랑캐族(족)이 아니냐고 하니 元帝(원제)는 발연히 怒(노)하여 말하되 너의 나라는 東邦(동방)오랑캐라 하거늘 어찌 어기려 하느냐고 호통 쳤다 이에 대답하되 臣(신)의 나라를 옛날에는 비록 오랑캐 운운한 일이 있지만 箕子(기자)가 東封(동봉)되어서 부터는 衣冠(의관)과 文物(문물)의 실태로 보아 동방의 小中華(소중화)라 했거늘 어찌 오랑캐에 비한단 말이냐 했더니 元帝(원제)는 더욱 분노하여 당장에 목 베어 치우라 소리쳤다 그러자 元朝百官(원조백관)들이 간하기를 그러시면 다른 나라 사신들도 공포에 떨 것이고 그릇된 인상을 줄 것이므로 그의 나라에 돌려보내어 목 베게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바 그렇게 하도록 했는데 고려왕은 오히려 그 節義(절의)를 가상히 여겨 숨어 있게 하고 거짓으로 목배였다 하고는 三陟(삼척)에 가서 숨어 살도록 했다 그리고 姓(성)도 秦(진)씨로 고치게 한바 金字(김자)의 맨 아래 一字(일자)획에다 二획을 더하여 人字(인자) 위쪽에 三字(삼자)획을 만들어 첨가했음은 秦字(진자)의 바깥은 비록 변했어도 文字(문자)의 안으로는 옛 姓(성)을 숨겨 實存(실존)하고 있음을 뜻하도록 하여 세월이 오래되더라도 본姓(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崔文憲(최문헌) 휘 冲(충)의 九齋集(구재집)중 櫟室ꝯ話(역실쇄화)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후손 乃鎭 成鎭(내진 성진) 등이 朝鮮朝 純祖十七年九月二日( 조선조 순조십칠년구월이일) 임금의 행차 길목에서 엎드려 復姓(복성)을 호소함으로써 金姓(김성)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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