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6 17:56:12 조회 : 3323         
김창집 영의정 초상화 판매합니다. 본관 안동 이름 : 황태철

 

조선후기  김창집 초상화  판매합니다.

본관  안동  ,  72세의  조선후기  영의정입니다.

크기  77* 54.5cm입니다.    

초상화  확인하고   구입하세요     

판매가격  850만원    구입문의  011-862-1351  황태철입니다.

 

 

1648년(인조26)~ 1722년(경종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서울 출생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이고 어머니는 현감 나성두의 딸이다. 1672년(현종13)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1675년(숙종1) 아버지 김수항이 화를 입고 귀양가 있었으므로 과거 응시를 미루었다.

1680년(숙종6)에 선친이 유배에서 풀려나자 1681년 내시교관을 제수 받고, 1684년(숙종10) 공조좌랑으로 재직 중 정시문과에 을과로 늦게(37세) 급제하여 정언, 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숙종15) 기사환국 때 아버지가 진도의 유배지에서 사사되자, 귀향하여 장례를 치르고 형제들과 영평(경기도 포천)의 산중에 숨어 지냈다.

1694년(숙종20) 선친이 사면복관 된 후, 병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하였고, 다시 동부승지, 침의,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그 뒤 철원부사에 제수 되었을 때는 마지못해 취임하였는데 이때 큰 기근이 들고 도둑이 들끓어 민정이 소란하자 관군을 이끌고 이를 토평하였고, 강화유수, 예조참판, 개성유수 등을 역임하고 호조, 이조, 형조의 판서를 지냈다.

1717년(숙종43) 영의정에 오른 뒤 노론으로서 세자의 대리 청정을 주장하다가 소론의 탄핵을 받았고, 숙종이 죽은 뒤 영의정으로 원상되었다. 경종이 즉위하였으나 34세가 되도록 병약하고 자녀가 없자, 후계자 선정문제로 노론. 소론이 대립하였다.

이때 노론 4대신(김창집, 이이명, 조태채, 이건명)은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세우기로 상의하여 김대비(숙종의 계비)의 후원을 얻었다. 이에 경종의 비 어씨와 아버지 어유구, 시직 유봉휘 등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으나 시행하게 되었다.

1721년(경종1) 다시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상소하여 경종은 세제에게 정사를 맡길 것을 허락하였으나 소론의 격렬한 반대로 실패하였다. 그 뒤 소론의 극렬한 탄핵으로 노론이 축출되고 소론 일색의 정국이 되었다.

소론의 김일경, 목호룡 등은 노론이 반역을 도모하였다고 무고하여 신임사화가 일어나자 거제도에 위리안치 되었다가 이듬해에 성주로 옮겨졌다. 1722년(경종2) 영의정 조태구 등이 국문(鞠問)을 하자고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고, 같은해 4월 75세로 억울하게 사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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