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6 07:58:44 조회 : 480         
● 박정순(朴貞順) 여사(女士)(103歲)가 열행(烈行(烈女)賞을 받으셨다● 이름 : 김영동

박정순(朴貞順) 여사(女士)(103)가 열행(烈行(烈女)을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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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20220616열녀박정순표창장.jpg

安東金氏 進士公 弘派28松泉金永東

보화원(補化院)은 대구, 경북지역의 효행자(孝行者), 열행자(烈行者)와 선행자(善行者)를 찾아 선발(選拔) 시상(施賞)하여 효() 정신을 일깨우고, 이들의 행적()을 만천하(萬天下)에 알려 세인(世人)의 마음속에 등불과 같은 귀감(龜鑑)이 되고자 설립한 재단으로경상북도 의성군 다인 면 송호1(내송화)에 사는 박 정순(朴貞順) 여사(女士)2022616일 대구 대명동(大邱 大明洞)에 소재(所在)하고 있는 재단법인(財團法人) 보화원(補化院)에서 실시한 제 65() 보화상(補化賞) 시상식(施賞式)에서 열행상(烈行賞(烈女부분), 1801)을 받으셨다. 이날 수상자(受賞者)는 보화상(補化賞) 1, 효행상(孝行賞) 12, 열행상(烈行賞) 4, 선행상(善行賞) 4등 모두21이 상()을 받았다. 송화(松花) 마을의 박 정순(朴貞順) 여사(女士)100() 굴곡(屈曲)진 삶이 우리 후손들에게 귀감(龜鑑)이 되겠기에 소개(紹介)하고자 한다. 열행(烈行)의 공적(功績)을 살펴보면 올해 103() 의성군 다인 면 최고의 고령자인 박 정순(朴貞順)여사는 1940년 의성군 다인 면 안동김씨(安東金氏) 문중(門中)의 김 문한(金文漢)씨에게 시집와서 시조부모님과 시부모님, 그리고 두 명의 시동생(媤同生)까지 뒷바라지를 했다. 게다가 시 아주버님이 도일 유학(渡日留學)길에 탄 배가 침몰(沈沒)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간 손윗동서를 대신해 그 자녀 둘까지 돌보게 되었다. 다행히 아들 4형제를 낳아 큰집에서 분가(分家)하게 되었지만, 이후 아들 둘을 더 낳아 여섯 형제와 남편까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느라 속병이 날 정도였다. 특히 결혼 한지 얼마 안 된 남편이 일본(日本)의 해병부대로 강제(强制)노역(奴役)을 가게 되었고, 2년 후 가까스로 일본에서 도망쳐 고국(故國)으로 왔지만 일본군의 눈을 피해 타지(他地)에 숨어 살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해야 했다. 이후 우리나라가 광복(光復)을 맞으면서 부부는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그 사이 박 정순여사의 고생(苦生)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늘그막에 3년간 암 투병(癌鬪病)을 하던 남편을 간병(看病)도 박 정순여사의 몫이었다. 그녀 역시 70대 후반의 나이에도 남편의 식사를 챙기는 건 물론, 목욕(沐浴)과 대소변(大小便)의 뒤처리까지 맡아야 했다. 그 와중에도 여섯 명의 자식들을 모두 건실하게 키워낸 박 정순여사는 100() 잔치를 마치시고, 103()에 재단법인(財團法人) 보화원(補化院)에서 열행상(烈行賞, 烈女부분)을 수상(受賞)하시니 박 정순여사에 대해 마을 사람들의 칭송(稱頌)이 자자하다. <>

의성군 다인면 송화길47-3 金永東 ( 010-5315-8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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