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30 20:24:10 조회 : 5740         
구(舊)안동김씨와 신(新)안동김씨의 구분 이름 : 金碩顯
구(舊)안동김씨와 신(新)안동김씨의 구분
 
1. 현황
 
    가. 각종 보학(譜學)에 관한 문헌(文獻)에서 구분
 
         1979.4.1 일신각에서 발행한 '한국인의 족보'에 보면, "안동김씨는 본관(本貫)이 같으면서 시조(始祖)를 달리하는 2계통이 있으므로 신안동(新安東), 구안동(舊安東)으로 구별한다."고 하면서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안동김씨를 '구(舊)안동김씨'로,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안동김씨를 '신(新)안동김씨'로 구분하였다. 다른 문헌도 이와 유사하다.
 
    나. 구(舊)안동김씨인 '안동김씨대종회(安東金氏大宗會)'공식 홈페이지 기록사항
 
         "안동김씨라 하면 일찍이 고려조 부터 우리 안동김씨만을 일컬어왔다. 그런데 조선 중기에 후안동김씨(後安東金氏. 일명 新安東金氏))가 생겨나 혼동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안동김씨라 함은 우리만을 일컫는 것이 원칙이나, 두 안동김씨를 구분해야 할 경우에는 우리를 ('선(先)안동김씨', 또는 구(舊)안동김씨)라고 부른다."
 
         "옛날,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안동의 다른 명칭을 살려 상락김씨, 화산김씨, 영가김씨, 고창김씨, 복창김씨 또는 선안동김씨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종전에는 우리 성씨(姓氏)를 '선(仙)안동', 또는 '구(舊)안동'으로 혼용해 왔으나, 본 홈페이지에서는 2001.11.11부터 선안동(先安東)이란 명칭을 가능하면 주로 사용하기로 함."  
 
     다. 신(新)안동김씨인 '안동김씨대종중(安東金氏大宗中)' 공식 홈페이지 기록사항 
    
          특별히 기록하지 않았다.
 
2. 역사(歷史)적 사실비교
 
     가. 구(舊)안동김씨의 시조 김숙승(金叔承)
 
          (1) 경순왕(敬順王. ?-978)
               신라(新羅)는 56대 992년만인 경순왕(927-935)때 고려 왕건(王建)에게 항복하였고,   
               후일 왕건(王建)의 맏딸 낙랑공주(樂浪公主)와 혼인하여 정승(政丞)이 되었음. 
               경순왕은 슬하에 9명의 아들 중 7명이 낙랑공주가 낳았다. 그중 넷째 아들이 은열(殷說)이다.
 
          (2) 김은열(金殷說. 937- ?)
               김은열은 김숙승(金叔承)을 낳았다.
 
          (3) 김숙승(金叔承. ?-1011)
 
               안동김씨대종회 홈페이지 '평장사(平章事)공 기록 각종 자료에 보면, 숙승(叔承)은 (淑, 淑承, 叔興)등으로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사연표 김숙흥(金叔興)란에, 1011년 거란이 침입해 오자 구주(龜州)에서 거란군 1만여명을 격멸시켰으며, 그해 거란 성종이 이끄는 대군에게 중과부적으로 순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011년은 고려 8대 현종(顯宗) 2년이다.
               또 다른 문헌에는 출생년도가 955년이라고 하였다.
 
            (4) 김이청(金利請. 생졸년미상)
                 시조 김숙승의 손자. 고려 때 안동태수(安東太守)를 역임. 상락군(上洛君)에 봉함.
 
     나. 신(新)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901-?)
 
          (1) 출생
 
          부존의일칙(附存疑一則) 일계고적등기후식(佚系古蹟謄記後識)에 의하면 당소종천복원년신유(唐昭宗天復元年辛酉)에 흥덕궁(興德宮)에서 출생하셨다.
          신라 효공왕(孝恭王) 5년(서기 901), 후백제 견훤 10년에 출생하셨다.
 
          (2) 사성(賜姓)과 본관(本寬) 하사
 
           26세 때 고창성주(古昌城州 : 현 安東)로서 930년(신라 경순왕 4년. 후백제 견훤 39년. 고려 태조 13년) 1월 고창전투에서 고려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웠다.
           (26세, 또는 36세 때에 고창성주였다는 문헌이 있으나, 만약 36세 때라면  당소종천복원년신유년과 신라 효공왕(孝公王) 5년이 901년이기에 930년 고창전투 때는 성주(城州)께서 36세가 안됨. 따라서 36세 때 성주였다는 문헌은 수정하여야 함.)
 
           그리고 이 때 고창군을 안동도호부로 승격시키고, 3공신 중 권행(權幸)은 안동권씨로 사성(賜姓)하고, 김선평(金宣平)과 장길(張吉)은 본관(本貫)을 안동(安東)으로 하사하였다.
            이어 936년(후백제 신검1, 고려 태조 19)에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3. 결론(結論)
 
       가. 구(舊)안동김씨

             (1) 관향(貫鄕)
                  구(舊)안동김씨 시조 김숙승(金叔承.955?-1011)의 손자 김이청(金利請)은 '세재명덕수적안동자공시(世載名德受籍安東自公始)라는 여지승람 본부 인물기의 기록을 근거로 "안동김씨로 적을 받은 것이 공(公)으로 부터이며, 상락(上洛)으로 불리게 된 것도 김이청(金利請)으로 부터이다."라는 것을 구(舊)안동김씨 최초 족보인 경진보(庚辰譜.1580년.조선 선조13년)인 안동김씨성보(安東金氏姓譜) 발행으로 부터 안동(安東)김씨 관향을 사용하였다고 추정됨.
  
       나. 신(新)안동김씨

            신안동김씨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930년에 시조로 본관을 하사받았다.  
            즉, 시조 김선평은 '안동김씨'라는 본관(本貫)을 구(舊)안동김씨보다 먼저 하사받았다.
 
       다. 향후 정립(定立)  

            신(新)안동김씨(安東金氏)는 그냥 안동김씨이다. 
            다만, 각종 문헌상엔 이미 구(舊), 신(新)안동김씨로 구분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김방경(金方慶) 후손들은 '선(先)안동김씨'로 통일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각종 문헌이나 다른 성씨에서 오김(吾金)을 일러 '신(新)안동김씨'로 부르고 있으나, 그러나 오김(吾金)은 '안동김씨 태사공(太師公) 휘 선평(宣平)의 후예'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다시말해서 오김(吾金)은 오직 '안동김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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