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04 10:18:31 조회 : 3747         
본관 및 유래에 대해 이름 : 김상한
"효공왕5년 흥덕궁출생...."에 대해
이 내용은 대동보 수편을 자세히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함.
부존의일칙(의문 또는 의혹이 있는 한개 내용을 첨부한다)에 흥덕궁등이 나온다. 이 내용을 가지고 인용 재인용하니 한심한 일이다.
참고로 수편 내용을 소개한다.  내가 소개하는 내용에도 오타도 있을 것이고 잘못 해석한 것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안동김씨의 시조
 金宣平(김선평) : 新羅末以古昌郡城主佐高麗太祖破甄萱策功爲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享安東府司廟退溪李滉撰記廟庭碑後孫判書羲淳按本道時撰竝書. 墓安東府三十里西後古太庄里天燈山左麓後失傳 仁祖丙寅按輿地勝覽所載築壇子坐以祀後孫大提學昌協記有表. 神道碑後孫秘書丞寗漢撰後孫同敦寧容鎭書後孫判書宗漢篆(신라말이고창군성주좌고려태조파견훤책공위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향안동부사묘퇴계이황찬기묘정비후손판서희순안본도시찬병서. 묘안동부삼십리서후고태장리천등산좌록후실전 인조병인안여지승람소재축단자좌이사후손대제학창협記有表. 신도비후손비서승영한찬후손동돈녕용진서후손판서종한전) *대동보 수편 201쪽
신라말 고창군 성주로서 고려태조(918-1391)를 도와 견훤을 파했다. 그 공로로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공신으로 책봉받았다. 안동부사묘에서 제사를 올리다. 퇴계이황(1501-1570)이 묘정비를 짓다. 후손 판서 희순(1757,영조33-1821,순조21, 정조때의 문신. 호는 山谷,정조13년(1789) 문과에 급제학여 1816년 判義禁府事에 이르다. 시호는 文簡公이다)이 본도를 살필때 병서하다. 묘는 안동부 30리 서후 고태장리 천등산록에 있었는데 실전했다. 인조 병인년(1626년)에 여지승람(塚墓, 金宣平墓在付西古苔莊里)을 상고해서 子坐向으로 단을 쌓아 제사하다. 후손 대제학 창협(1651,효종2-1708,숙종34, 숙종때의 학자. 호는 農巖. 숙종8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동부승지·대사성등을 역임하고, 청풍부사로 있다가 1689년 기사환국때 부친이 진도의 배소에서 사사되자 永平에 은거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부친이 신원(伸 )되고 호조참의·대제학·예조판서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記有表. 신도비는 후손 비서승 영한이 찬하고 동돈녕 용진이 썼으며, 후손 판서 종한이 전서를 쓰다.
* 기사환국 : 숙종15년 장희빈 소생의 아들로 원자를 삼으려는 숙종에 반대한 송시열 등 서인이 장희빈의 편을 든 남인에 의해 유배되고, 정권이 서인의 손에서 남인에게 넘어간 일이다. 송시열이 제주도에서 사사되고 金壽興이 유배되었다가 사사되다. 김수흥의 아우 金壽恒도 기사환국때 진도에서 賜死되었다.
*갑술옥사 : 숙종이 민비를 복위시키고 왕비가 되었던 장소의를 희빈으로 복귀시켰다. 남인들은 사사 또는 유배되고, 죽은 송시열, 김수항등에게는 작위를 주었다. 이후 소론이 득세하여 노소(老少)의 쟁론이 일기 시작하였다.
 2.시조(소위 新安東 또는 後安東의 始祖)와 신라 王室과의 관계
전혀 관계가 없다. 연결고리가 없다. 단지 우리의 시조는 신라말의 고창군 성주 金宣平이란 말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3. 附存疑一則(부존의일칙) *의문이 있는 한개 조목을 첨부함
 佚系古蹟騰記後識(일계고적등기후지)
시조 휘 선평
 唐昭宗天復辛酉(당소종천복신유)에 신라 興德宮(흥덕궁)에서 나시니 鳳眼龍鬚(봉안용수)와 星精虎威(성정호위)이다. 36세에 고창군성주로 郡兵을 크게 일으키고 고려 태조를 도와 견훤을 병산에서 大破하다. 二子를 낳으니 長은 璣요 次는 玹이니 寶文閣學士太學署丞이다.
제1자 璣(기)
 자 준흥
 자 인복
 자 습돈
위의 내용은 素山族人 迪根(적근)의 집에서 나왔으니 곧 14세 傍祖諱 三益의 手記로 전하여 온 것이다. 반복하여 심사함에 의심이 없으나 이를 징빙할만한 것이 못된다 하여 없에지 못할것이 분명하다. 아깝다 그 불행이 先父老 修譜를 처음 논의할 때 나오지 못하고 또 불행이 전번에 속간할 때 미치지 못하였으니 아! 迪根에게 죄가 있던가 실로 顯晦(현회)함이 運數가 있는 것이라 또 무엇을 한탄하겠는가 이에 삼가 손 씻고 謄記하여 異日 重譜 할 의논이 있을 때를 기다리는바로 僉宗에게 포고하고 爛商歸正하여 累世의 恨을 펴게 됨이 죽을 때를 당한 사람의 지극한 소원이다. 후손 前參奉 迪根은 근식하노라.
(佚系는 漁潭公(諱三益)의 手記로 사위 鄭伋(정급)에게 전한 것을 정급의 후손에게서 迪根이 얻어서 석근에게 전하다.)

일명 구안동김씨의 홈페이지에서도 흥덕웅등의 내용을 읽은 적이 있고 신안동김씨를 소개한 내용등에서도 흥덕궁이니, 용안봉수니 하는 말들을 많이 보았다. 대동보 수편을 다시한번 살펴보고 부존의일칙 이란 내용을 몇번 읽어보면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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