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05 11:37:04 조회 : 5651         
신안동김씨(or 구 안동김씨) 소개 이름 : 김성동
안동김씨 내력(신안동김씨, 구안동김씨(x))

김선평 (金宣平 ?∼?)   신  안동김씨의 시조

설명;
고려 초기 공신. 고창군(古昌郡;安東)의 성주(城主)로서 930년(태조 13) 권행(權幸)·장길(張吉) 등과 함께 태조(왕건) 와 후백제(後百濟)의 견훤(甄萱)을 고창군에서 대파, 공을 세우고 대광(大匡)이 되었으며 이에 고창군은 안동부(安東府)로 승격되었다. 뒤에 벼슬이 아부(亞父)에 이르렀다.
-===========================================================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은열의 둘째 아들 숙승(叔承)을 시조로 하는 세칭 ‘구안동’과 고려 태사(太師) 선평(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안동’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이 두 ‘안동’은 조선시대에 정승 19명, 대제학 6명, 왕비 3명을 배출하였다.

신 안동김씨(安東金氏)

 [유래]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말 경애왕때 고창(안동)의 성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경순왕 4년)에 권행, 장정필과 함께 향병을 모으고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안동)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 무렵 고려에 귀순하여 개국공신이되고 벼슬이 태광태사(太匡太師)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도정을 지낸 김극효(金克孝)를 중시조(1세)로 하고 있다.
-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시조 권행과 김선평, 장정필을 모시기 위해 983년(고려 성종 2년)에 세운 삼태사묘는 경북 안동시 북문동 24번지에 있으며 매년 2월과 8월에 제향한다.
[계 파]
지철파, 원수파, 열파 등 3파가 있다.

[ 대표적 인물 ]
- '신안동'을 가리켜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이라고 하여 큰 벼슬을 많이 내었다는 비유로 삼는데, 특히 조선 후기의 세도가문으로 더 알려졌다.
- 김상용(尙容) : 김극효의 아들. 우의정을 지냈다.
- 김상헌(尙憲) : 김상용의 동생. 좌의정을 지냈다. 후손이 세도가문으로서의 주류를 이루어 이들을 '장김(壯洞金氏)'이라고도 한다.
- 김조순(祖淳) : 딸이 순조비가 되면서 김달순(達淳), 김문순(文淳), 김희순(羲淳), 김유근, 김교근(敎根) 등 일족이 정승, 판서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 김조근(祖根) : 헌종의 장인. 호위대장을 지냈다.
- 김병연(炳淵) : 김삿갓으로 유명하다.
- 김옥균(玉均) : 구한말의 정치가이다.
- 김좌진(佐鎭) : 독립운동가이며 장군이다.
- 김두한(斗漢) : 김좌진의 아들. 국회의원을 지냈다.
- 영의정 : 김좌근(左根), 김흥근(興根), 김병학(炳學), 김병국(炳國), 김병시(炳始) 등이있다.
- 판서 : 김수근(洙根), 김보근(輔根), 김병기(炳冀), 김병주, 김병덕(炳德), 김병지(炳地), 김병교(炳喬) 등 수십명이 있다.


[항렬표]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순(淳) 근(根) 병(炳) 규(圭) 진(鎭) 한(漢) 동(東)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현(顯) 년(年) 일(鎰) 구(求) 모(模) 연(然) 배(培)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선(銑) 원(源) 영(榮) 사(思) 준(埈) 선(善) 택(澤)
 43세 44세 45세  
식(植) 환(煥) 철(喆)
-----------------------------------------------------------------
신,안동김씨 (新,安東金氏)
 
 1> 시조 : 김선평[金宣平]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안동(安東)은 경북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의  창녕국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고타야국,·고창군으로 불리웠고,  고려 태조가 견훤과 싸워 전공을 세움으로써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그후 영가군, 복주로 개칭되었다가 1361년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말 고창군(안동)성주로서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정벌하는데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에 책록되고  대광 태사의 벼슬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문호를 개방한 안동김씨는 습돈(習敦)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면서  원손(遠孫) 계행(係行)이 조선 성종 때 대사간에 오른 것을 기점으로 명문의 기틀을 다지고   왕실의 외척이 되어 세도가문의 지위를 굳혔다.   광해군때  극효(克孝)는 정3품 도정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5형제 중 장자 상용(尙容)과  막내 상헌(尙憲)이 뛰어났다.
     상용은 인조때 우의정에 올랐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원임대신으로서 강화도에 들어갔다가 성이 함락되자 입었던 옷을 벗어 하인에게 주며   " 네가 만일 살거던 이옷을 내 아이들에게  전하여 뒷날 허장(虛葬)하는 제구로 쓰도록 하라" 하고 남문으로 가서 화약궤에 걸터앉자   측근에게 "가슴이 답답하여 담배가 피우고 싶으니 불을 가져오너라" 하여 화약에 불을 던졌다.  그의 손자 수전[13세]이 곁에 있었는데 종에게 안고 나가라고 명하였으나  아이는 울면서  "할아버지를 따라 죽겠습니다" 하며 가지않아 종과 함께 모두 죽었다.
 동생 상헌(尙憲)은  백부인 대효에게  출계하였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그는 관직에 있는동안 강직하기로 이름이 나서 관민들이 아예 부정할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한편 안동김씨의 재중흥을 일으킨 수증(壽增)·수흥(壽興)·수항(壽恒) 3형제는  우의정 상헌의 손자이며 광찬의 아들들이다.  수증(壽增)은 형조와 공조정랑을 지냈으며, 수흥(壽興)은 숙종때 영의정에 올랐으나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장기에 유배되었다가  배소에서 죽었다.  수항(壽恒)은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을 지냈으며 영의정에 올라 [현종실록]편찬에 총재관을 지냈다.  안동 김씨의 <육창(六昌)>으로 일컬어진 수항의 아들 6형제 중 맏아들 창집(昌集)은  숙종때 영의정을, 둘째 창협(昌協)은 대사간을 지냈고, 셋째  창흡(昌翕)은 성리학에 밝아     학자로 명성을  떨쳤으며, 창업(昌業)은 문장과  도학으로 창집(昌緝),·창립(昌立)과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이들 육창의 인맥을 살펴보면 첫째 창집의 아들 제겸(濟謙)이 우부승에 이르렀고,   손자 이소(履素)가 정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후 영돈령부사에 이르렀다.  한편 창집의 현손 조순(祖淳)은 양관대제학에 올라 그의 딸이  순조의 비(순원왕후)가 되자   영안부원군에  봉해져서 철종때의  안동김씨세도정치의 기초를 마련했고 문장과그림에 능했다   이조 판서 명순의 아들 홍근(弘根)은  헌종때 공조와 병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올랐으며,   응근(應根)은  형조판서에 올랐다.   홍근의 아우 흥근[興根]은 헌종때 예조 판서를 거쳐  철종때는 좌의정에 이어 영의정에 이르렀고 고종이 즉위하자 [철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그외 창집(昌集)의 후손 중에서는 조근(祖根)이 영흥부원군에 봉해졌고, 철종 때 영의정을  세번 역임한 좌근(左根)은 좌찬성에 오른 병기(炳基)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거창부사  인순의 아들 수근(洙根)은 헌종때 대사성과 이조 판서를 거쳐 선혜청 당상이 되고   병조와  형조판서를 역임한 후 한성부  판윤에 이르렀으며, 수근의 아들  병학(炳學)은    고종때  [철종실록]을 편찬하고 조두순,·이유원 과 함께 [대전회통]을 완성했다.   창흡(昌翕)의 후손에서는  <초계문신>으로 뽑혔던  달순(達淳)이 우의정에 올랐으며,  매순(邁淳)은 문장이 뛰어나서 홍석주와 함께 <여한 10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그밖에  선천부사 익순의 손자 병연(炳淵)이 조선의 이름난 시인으로 전국을 방랑하며     해학과 재치가 넘친 싯귀로 세상을 풍자하는 작품을 남겼고, 한말에 와서는 개화혁명)의 기수   옥균(玉均)과  한일합방의 울분으로 자결한 석진(奭鎭),  대한독립군을 결성하고   흑룡강을 무대로 독립군 양성에 전력했던 좌진(佐鎭), 만주에서 재만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여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종진(宗鎭) 등이 명문 안동 김씨의 전통을 살렸다.
 
 3> 집성촌
 경기도 고양군 중면 일원
 충남 논산군 일원
 경기도 화성군 정남몀, 동탄면 일원
 전북 순창군 풍산면 일원
 강원도 명주군, 강동면 일원
 경북 예천군 일원
 충북 청원군, 괴산군, 음성군 일원
 경남 함안군 칠서면 일원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남한에 총 95,735가구,     398,24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3태사묘:
안동시의 중심부인 북문동에 자리잡고 있으며,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 권행, 장길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1481년(성종 12)에 관찰사 김자행이 목면과 베를 주고 예우하면서부터 묘우를 세우는 터전을 마련했고 이어서 1540년(중종 35) 안동부사 김광철이 현 위치에 묘를 건립하였으며, 경상도 관찰사 권철이 제전을 설치하고 노복을 주었다. 또한 1556년 안동부사로 부임한 권소는 제전과 곡물을 더해주고 권씨 성을 가진 수석 호장에게 맡겨 이식을 취하여 매년 제사를 받들게 하는 등 제도화에 힘을 쏟았다. 태사묘의 대문인 경모루를 들어서면 삼태사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보물각, 제관들의 대기실 역할을 하는 숭보당, 삼공신의 위폐를 봉안한 안묘당, 동·서재, 차전각, 주소 등이 배치되어 있다. 보물각에 는 삼태사의 유물인 옥관자 외 21점이 보존되어 있다. 숭보당 안에는 퇴계선 생이 지은 중건기문 등 이 게판되어 있다. 보물 제451호 묘정에는 삼공신비가 세워져 있다.
 
===================================================================
구 안동김씨 [참고용입니다.]
구, 안동김씨 (舊,安東金氏)   안동김씨 홈으로
 
 1> 시조 : 김숙승[金叔承]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안동(安東)은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의 창녕국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고창군으로 불리웠고,  고려 태조가  견훤과 싸워 전공을 세움으로써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그후 영가군 또는 복주로 개칭되었다가 1361년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안동 김씨(安東金氏)의 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손자이며  대안군 김은열의  둘째 아들이다.  누대로 안동에 세거해 오던 안동 김씨는 숙승(叔承)의  7세손 방경(方慶)이 고려때의 명장으로  그는 중서령에  추봉된 효인(孝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247년 서북면 병마판관이 되었다.  그는 원종조에 일어난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후
     문하시중이 되어 원나라의 부름을 받고 들어가 금안장,·채복,·금은촛대 등을 하사받고,
     돌아올 때 개부의동삼사에 배명되었다. 

     그후 상락군 방경(方慶)의 아들과  손자대에서 크게 융성하여 훌륭한 명신을 많이 배출시켰다.      방경의 아들 5형제 중 맏아들 [선]은 전법판서를 지냈고, 아들 승용(대제학),·승택(평장사)를      지내고 ·승우(상서)가 현달했다.  
     삼중대광으로 상락군에 봉해진 흔(炘)과 판삼사사에 올라 상락공에 봉해진 순(恂)도 크게      명성을 떨쳐 가문을 빛냈으며, 순(恂)의 아들 영돈(永暾)과 영후(永煦) 형제가 조적의 난에      공을 세워 상락부원군과 상락후에 각각 봉인되었다.
     중시조 방경(方慶)의 넷째 아들인 [논]은 지밀직사사와  천우위 대장군에 이르렀다. 
     가문의 의맥을 드높인 사렴(士廉)과 사형(士衡) 형제는 영후의  손자이자 [천]의 아들로서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개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속에서 서로가 반대의 길을 걸어갔다.       사렴(士廉)은 벼슬이 문하시랑을 거쳐 안렴사에 이르렀고,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바른말 잘하기로 유명했으며 문장과 덕행으로 명망이 높았으나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켜      충청도 청원군 오창면 모정리 도산에 은거하여 두문불출하고 학문으로 일생을 마쳤다.      그는 평소에 한양을 향하여 앉지도 않았으며  이성계가 좌사간의 벼슬을 주며 불렀으나     불응하며 "고려 신하로서 사직을 보존치 못한 죄인이 무슨 면목으로 선왕과 조상을 뵈이랴"고      탄식하였으며 임종때 "내가 죽거든 심산에 묻어주고 묘도 쓰지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며     후일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하여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옛 친구로 이성계의 조선창업을 도운 사형(士衡)은 개국정사일등공신으로 상락백부원군에      봉해지고  벼슬이 좌의정으로 치사할 때까지 한 번도 탄핵을 받은 일이  없었다.       연산군의 폭정 때 뛰어난 재치로 많은 문신들의 화를 면하게 했던 수동(壽童)은       상락부원군 사형(士衡)의 현손이며 첨지중추부사 [적]의 아들이다   그는 예서에 능했으며      무게가 있고 지혜가 많아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그를 시비하지 못했다.      수동의 아우가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영안군에 봉해진 수경(壽卿)이며,
     명종조의 명신충갑(忠甲)의 아들 시민(時敏)은  훈련원 판관이 되었을 때 군사에 관한 일을      병조판서에 건의한 것이 채택되지 않자 그 면전에서 군모를 벗어 땅에 짓밟고 벼슬을 사임한      기백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진주판관으로, 죽은 목사를  대신하여      성을 구축하고 사천,고성, 진해,·금산 등지의 싸움에 크게 이겼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혈전인      진주성의 싸움에서 크게 적을 격퇴하고 소탕한 적병을 순찰하던중 시체속에 숨었있던     적의 저격으로 이마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밖에 조선조에서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관찰사 자행(自行)의 손자  희수(希壽)가
     그림과 글씨에 능했으며 특히 해서에 일가를 이루었다.      중종조에  김안로의 비리를 논핵하다가 문의로  귀양갔던 노(魯)는 조광조의구제를 상소하여
     더욱 명성을 떨쳤으며, 명종때 별시문과에 장원했던 홍도는 정치의 폐단을 강력히 간했고,     김일손, ·박은 과 함게 <삼대문장>으로 일컬어졌다. 
     한편 홍도(弘度)의 아들 첨(瞻)과 수(粹)도 가문의 문맥을 이었고, 첨(瞻)의 아들 성립(誠立)은     유명한 허난설헌의 남편으로 임진왜란 때 31세의 젊은 나이로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한말에 와서는 병인양요때 수도방위를 담당했던 선필(善弼)이 유명했다.  자주독립을 평생의      소원으로 삼고 민권투쟁의 선봉장이었던 백범 구(九)는 안동 김씨가 자랑하는 인물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순영(淳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893년 동학에 입교하여  동학혁명을     지휘했으며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위해 일본군 중위를 때려 죽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고종의 특사령으로 감형되어 복역중 탈옥하여 마곡사의 중이 되기도 하였다.       그후 임시정부 주석(主席)에 선임되어 민족분단의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서서 남북협상을     제창했고  한독당  당수로 있다가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져 1949년 6월 74세의      생애를 마침으로 안동김씨의 전통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남한에 총 95,735가구,     398,24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경북 안동군, 예천군 감천면 일원
 충남 부여군 부여읍 일원
     충북 괴산군 증평읍, 불정면 탑촌리 일원
 충남 천안군 병천면 가전리
     충북 청원군 오창면 일원
 전남 고흥군 도양읍 도덕리
 
구 안동김씨(安東金氏)

[유래]
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아들로 공부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중시조(1세) 김방경(金方慶, 충렬공)은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원종 때의 명장으로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하여 정란정국공신으로 벼슬이 시중,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판전리사사, 도원수에 이르고 상락군에 봉해졌다.

- 김방경의 향사는 음력 10월 9일에 한다.

[계 파]
김방경의 6세손대에서 21파로 분파되어 그 중 13파만이 현존하고 있다.
- 제학공파(提學公派) : 김익달(益達)
-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 김사렴(士廉)
- 의익원공파(翼元公派) : 김사형(士衡) - 조선개국 1등공신. 태종때 좌정승에 올랐다.
- 군사공파(郡事公派:) : 김칠양(七陽)
-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 김구용(九容)
-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 : 김구정(九鼎)
- 밀직사사공파(密直司事公派)
- 개성윤공파
- 전서공파
- 복야공파(僕射公)
- 안정공파
- 대호군공파

[ 대표적 인물 ]
- 김선 : 김방경의 아들.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를 지냈다.
- 김흔 : 김방경의 아들. 찬성사를 지냈다.
- 김순(恂): 김방경의 아들. 삼사판사(三司判事)를 지냈다.
- 김윤(倫): 김방경의 아들. 밀직사지사(密直司知事)를 지냈다.
- 김승용(承用) : 김선의 아들. 대제학을 지냈다.
- 김승택(承澤) : 평장사를 지냈다.
- 김영돈(永暾) : 유명한 무장(武將)이다.
- 김영후(永煦) : 우정승을 지내고 후손이 조선 전기에 세력을 크게 떨쳐 사실상 '구안동'의 주축이 되었다.
- 김질 : 좌의정을 지냈다.
- 김수동(壽童) : 영의정을 지냈다.
- 김찬(瓚) : 이조판서를 지냈다.
- 김자점(自點) : 인조 때 영의정으로 역모죄로 처형되면서 구안동의 세는 꺾이게 되었다.
- 김제갑(悌甲) : 원주목사로 임진왜란 때 순절했다.
- 김시양(時讓) : 판서를 지낸 청백리이다.
- 김휘(徽) : 김시양의 아들. 이조판서를 지냈다.
- 김득신(得臣) : 숙종 때의 시인이며 참판을 지냈다.
- 김응하(應河) : 무장(武將)으로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 김응해(應海) : 김응하의 동생. 훈련대장을 지냈다.
- 김중기(重器) : 훈련대장을 지냈다.
- 김구(九) : 백범(白凡). 독립운동가, 정치가. 3.1운동후 중국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내무총장을 지냈으며, 1928년에 항국독립당을 결성했다. 1940년 임시정부의 주석이되었으며, 해방되자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여 독립당 당수 등으로 있다가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 족보 발행 ]

- 경진보 : 1580년(조선 선조 13년)
- 기미보 : 1739년(조선 영조 15년)
- 무술보 : 1778년(조선 정조 2년)
- 을유보 : 1825년(조선 순조 25년)
- 임인보 : 1902년(조선 고종 6년)
- 을해보 : 1935년
- 기미보 : 1979년

[항렬표] 21세
 22세    23세 2425세 26세 27세
-원(源) 영(榮)- -묵(默) 재(在)- -회(會) 태(泰)- -식(植)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용(容)- -교(敎) 종(鍾)- -우(雨) 병(秉)- -희(熙) 기(基)-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현(鉉) 수(洙)- -동(東) 연(然)- -혁(赫) 진(鎭)- -영(泳)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47세 48세
근(根)- -병(炳) 효(孝)- -용(鏞) 택(澤)- -목(穆) 희(熹)-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47세 48세
-규(圭) 련(鍊)- -준(浚)
 김성동 06-10-03 18:56   
  ◁ 이전글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