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16 15:46:06 조회 : 3137         
청음선생과 부국강병 이름 : 박성채
청음 김상헌 선생은 곧은 절개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반정(仁祖反政)에 성공한 서인(西人)세력은 이전 광해군이 당시 중국 대륙정세가 명(明)나라가 망해가고 만주에서 강력하게 일어나는 여진족의 후예인 후금(後金)이 크게 강성함을 알고 중립외교로 명나라와 후금간의 전쟁에도 조선을 지켰는데,

인조반정후 집권한 서인세력들은 망해가는 명나라를 숭배하고 새롭게 강성해가는 후금(청)을 멸시하다가, 두차례에 걸쳐 청나라의 군사적침입을 받아 당시 조선국토와 백성들이 크나큰 피해를 초래했습니다.

두번째 침입인 병자호란시 인조와 대신들은 강화도로 가려다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고 대항하다가,

당시 큰 추위와 식량부족으로 굶어죽고 동사(冬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자 결국 인조는 성을 나와 지금의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땅에 이마를 세번찧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는 치욕을 당합니다.

또 수 많은 여성들이 청나라군사들에게 강제로 끌려갑니다.

왜 김상헌 선생은 당신이 그렇게 망해가는 명나라에 애착을 갖고 야만족인 여진족의 청나라를 멸시하려면, 평소 국방준비라도 제대로 해놓고 해야지 국방은 허술하기 짝이 없으면서 무조건 척화(斥和)만을 주장하여 수많은 백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까?

김상헌 선생도 병자호란 이전 임진왜란을 겪었을텐데,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했나요? 임진왜란을 모소 체험한 광해군은 국방을 튼튼히 하고, 국제정세를 잘 파악하여 새롭게 강성해지는 청을 적절히 다룸으로써 조선의 안정에 기여했는데,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인조(仁祖)와 서인세력들은 국제정세는 전혀 살피지 못하고 다 쓰러져가는 명(明)을 숭배하고, 강성한 청(淸)나라를 멸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국방은 전혀 대비도 안하고...

청음 김상헌 선생의 기개와 강화도에서 순절(殉節)한 김상용 선생의 의기(義氣)와 충절(忠節)은 가상하나, 청나라군사들에게 학살당한 백성들의 아픔은 또 무엇인가요?

왜 부국강병(富國强兵)하지 못하고,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신주단지 모시듯하나요? 냉철한 국제정세 판단속에 우리 조선,우리 조선백성들을 보호하고 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할 외교정책을 구상하지 못했나요?

선비의 기개와 의기는 한 개인의 것이아닌 나라와 백성을 위한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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