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 김대현의 시조 세계
詩ㆍ書ㆍ畵의 상상력, 그 정체와 禪時調
유 한 근 / 문학평론가ㆍ한성디지털대학교 교수
김대현 시인의 시조 심사평 <옛 시조로의 원형 회귀 시도>를 쓰면서(계간 <시서화 2007 봄호) 나는 그의 시조 창작 작업을 이렇게 평한 바 있다. “김대현의 시조 10수의 숨은 화자는 ‘사대부’의 풍류객이다. 시조를 쓰고 있는 시적 화자인 시인은 현대인인데 반해, 시조 속에 숨어있는 화자는 우리의 사대부적인 선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대부적인 일상에서의 마음가짐을 시조의 운율에 실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고, 중국의 고사를 시적 소재로 끌어와 알레고리적 표현구조에 담아내고 있는 만만치 않은 솜씨가 그것이다. 김대현은 이미 등단한 현대시 시인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있는 정형시인 시조에 새삼 도전하고 있는 것은 그 나름의 시조의 새 지평을 열려는 숨은 속셈이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제목을 따로 짓지 않고 옛 시조처럼 무제시로, 편의상 일련번호만 매겨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시조 지평을 옛 시조의 원형 복귀에서부터 탐색해보려는 도전 의식이 숨어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형태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부터 다시 탐색하며 새로운 현대시조의 세계를 열려는 그 도전 정신에 기대를 건다.”는 심사평이 그것이다.
그의 시조 108수를 일별하면서 이런 나의 문학적 판단이나 기대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시조집으로 묶게 된 이번 시조들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많은 시조들이 선시조(禪時調) 혹은 불교 시조라는 새로움이다.
* 선시조(禪時調)의 새 지평
현대시조에서도 선시조라는 장르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시 혹은 선시조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선시 또는 선시조를 쓴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白雲堂에 坐定하고 不立文字 헤어보니
山川은 經典이요 萬物이 法文이라
말없이 종종 걸어가는 그믐달도 수행중
-<1> 전문
위의 시조처럼 불교에서의 선(禪)은 불립문자, 언어도단의 비언어화의 심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불교가 비언어적 마음을 바탕으로 성취되는 것처럼 선은 언어 이전의 것이며, 비언어적인 것, 침묵 속에서 그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선의 본체인 마음을 비우는 정화 상태는 언표(言表)의 과정 또는 언어화 과정을 거친 후 얻게 된다. 언어화를 통한 침묵의 깨우침, 언어화 과정을 통한 비언어화 상태에서의 심적인 깨달음을 우리는 선(禪)의 상태라 일컫는다.
따라서, 선어(禪語)는 언어 이전의 언어이기 때문에 직관된 상징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 비언어적 마음을 언어로 형상화시키는 것이 선어라 할 수 있다. 상징은 가시의 세계와 불가시의 세계, 즉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일치시키는 표현 양식이다. 상징은 대상을 직접 지시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을 매개로 대상을 암시한다. 이렇게 상징은 어떤 대상을 암시할 뿐 아니라 추상적인 사상, 감정까지도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표현한다. 요컨대, 관념과 심상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상징이라는 표현 양식이다.
위의 시조<1>의 초장 “白雲堂에 坐定하고 不立文字 헤어보니”는 시인이 선에 입정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고 중장 “山川은 經典이요 萬物이 法文이라”는 경전과 법문이 따로 있지 않고, 산천의 모든 사물이나 사상(事象)이 곧 경전이고 법문임을 깨닫는 부분이다. 따라서 종장은 “말없이 종종 걸어가는 그믐달도 수행중”이라는 일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의 ‘그믐달’은 상징어다. 나 또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만물의 상징어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부처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경전의 말을 이미지도 그려 놓고 있는 것이다.
내 일찍 白雲堂에 烏竹靑竹 심었더니
칼바람 고추바람 비보라가 꼬시어도
곧은 손 붓대롱 잡고 마파람만 치누나
-<6>전문
위의 시조에서는 화자인 시인의 의지나 선적 깨달음이 잘 드러난다. 앞의 시조 <1>에서 보았듯이 ‘백운당’은 시인이 거처하는 처소나 호(號)일 수 있으나, 그보다는 시인 자신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인의 집에 혹은 시인의 마음속에 오죽청죽을 심었더니 매서운 칼바람, 고추바람이 불어 닥쳐 마음 산란하게 꼬셨지만, 시인 자신은 곧게 붓을 잡고 있는 시서화인으로서 꺾이지 않는다. 혹은 그에 마파람처럼 대응한다는 강한 시인의 마음을 그린 시조이다. 칼바람이나 고추바람은 시인의 힘든 사생활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일 것이다. 우리의 현실적인 삶은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천상 선비나 시인인 청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는 고달프고 힘들기 마련이다. 그런 세상의 삶을 칼바람, 고추바람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의 이런 마음은 시의 곳곳에서도 나타난다.
만남도 헤어짐도 하늘의 뜻이거늘
어쩌다 가슴 아린 사랑을 품었을꼬
백발아 너는 아느냐 붓 대롱 왜 우는지
-<2> 전문
하늘에 머리를 두고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하늘의 뜻은 천명(天命)이다. 현대인 중 천명을 거역하지 않는 삶을 사는 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늘 사랑을 품고 사는 이 몇 명이나 될까? 위의 시조에서의 전(轉)인 “백발아 너는”는 누구인가? 아마도 ‘백발’은 산신령, 천지신명, 지혜로운 자, 깨달은 자, 그리고 세상을 등진 초월한 자 등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우는 붓대롱’은 시인 자신을 은유한 표현이다. 사랑까지도 걸림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시인에게 있어 세상의 모든 것은 번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시조집의 시조가 108수인 것이다.
티끌도 부처니라 귀빠지게 들었어도
마음 문 닫아놓고 깨치기를 원해본들
오경에 홰치는 소리 수탉인줄 어이 알리
-<108> 전문
위의 시조는 108번째, 이 시조집의 마지막 시조이다. 깨달음에 대해 재인식하는 시조이다. 이론적이나 관념적으로 만물이 부처임을 알고 배웠지만,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는 마음의 이치를 재확인해주는 시조이다. 열린 마음, 놓은 마음, 하심(下心)이 번뇌 가득한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키워드인가를 환기해주고 있는 시조이다. 오경에는 수탉이 홰를 치지 않는다는 생각은 고정 관념이며, 인간의 무지한 습(習) 때문에 저지르게 되는 잘못된 인식이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의 관념이나 이데올로기, 그리고 고정된 습에 묶여있는 것이다. 세상은 무한하며, 무한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지평은 늘 상 열려 있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이 그 열린 지평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김대현 시인은 불심을 통해 시조로 표상 해준다.
*시서화의 상상력, 그 힘의 정체
김대현 시인은 시뿐만 아니라, 서화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서화에 두루 능통하다는 것은 우리의 조상인 옛 선비의 풍모를 이어받았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성리학과 문인화와 풍류에 정통하면서도 청렴, 검소를 실천하는 딸깍발이 선비정신, 그 선비정신의 한 면모를 그의 시조에서 우리는 엿볼 수 있다.
초장은 삼사 삼사 중장도 삼사 삼사
종장은 삼오 사삼 감칠 듯 맛난 시조
어쩌다 음률 버리고 아옹다옹 우기나
부른 배 둥둥 치면 남들도 따르리까
우매한 초록동이 배울까 두렵구나
앗어라 까막까치야 옛 시인이 잠 깬다
-<4> 전문
혹자는 모든 예술은 음악으로 향한다고 했다. 문학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선조들의 풍류에 음악이 빠지지 않았듯이, 우리의 고전 시가에 음악성, 운율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그 대표적인 운율이 3.4조를 기조로 하고 있는 시조이다. 한데 자유시로 넘어오면서 우리 시의 운율은 외형율에서 내재율로 바뀌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내재율에 대한 고려조차도 없이 시를 쓴다. 운율은 우리의 ‘호흡’ 혹은 ‘숨’과 깊은 연관이 있다. ‘숨’은 우리의 생명이다. 살아있음에 대한 유일한 확인 요소다. 그만큼 호흡이나 숨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대시에서는 운율을 간과해버린다. 하지만 현대시조는 위의 시조처럼 정형율격을 문법처럼 지키지는 않아도 3.4를 기본 율격으로, 종장의 전(轉) 부분의 3.5율격은 최소한 지키려한다. 3.4와 3.5는 우리 한국인의 기본 율격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위의 시조는 역설하고 있어 김대현 시인이 왜 굳이 정형시조와 율격을 지키려하는지 그 문학관 또는 예술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詩心을 솔가지에 넌즈시 걸쳐두면
선바위 우뚝 서고 바람이 나부끼매
솔방울 이슬 머금고 벼랑 끝에 춤춘다
우유 빛 가슴하나 中峰이 찾아들면
밤 세워 내민 얼굴 쓰다듬고 보듬으니
한 一字 힘찬 筆勢는 온 天地를 탐했네
곧추선 푸른 氣像 三絶을 기다리면
세상사 바람결에 꿈꾸듯 스쳐가도
文友는 詩書畵 달거리 입맛 다셔 즐긴다
-<7>전문
위의 시조는 3장 6구 12음보의 정형시조는 아니고 3연 9행의 시조이지만 그 구조는 기ㆍ승ㆍ전ㆍ결을 따르고 있으며, 결부분에서의 전(轉)이라 할 수 있는 구절이 3연의 첫행 “곧추선 푸른 氣像 三絶을 기다리면”으로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삼절(三絶)은 송도 삼절이 아니라, 시ㆍ서ㆍ화를 의미한다. 그 삼절이 푸르게 곧추선 기상이 되기를 시인은 원한다. “세상사 바람결에 꿈꾸듯 스쳐가도” 결코 서서화 삼절만은 영원하기를 바란다. “귓가에 앉은 숨결 뀌뚜리 선잠깨고/꽃향기 풍기더니 알알이 영근 밤톨/달빛에 취한 秋夜는 색정소리 요란타”(<20>전문) 해도, “부어라 산천초목 마셔라 삼라만상/빈 대롱 가벼우니 담은들 무거우랴/천성이 곧고 비었는데 다 마신들 어떠리”(<12>중장 인용)라는 호기로, “得하려 마음 열면 깨달음 멀어지고/逸하려 다리 펴면 불안만 가깝다네/깨달음 버려버리고 다리 펴고 살련다”(<11>전문)라는 불심으로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올챙이 때 모르면서 오늘이 있을건가/옛것은 마다하고 새로움만 쫓을쏘냐/한치 앞 보지 못하는 당달봉사 애달프다”(<38> 전문). 이 시처럼 새 것보다 옛 것에 가치를 두고 시인으로, 서예가로서, 그리고 화가로서의 삶을 산다. 그러나 예술인으로서 삶의 힘이 시서화의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해도 자연으로서의 삶에서 있어서의 상상력과 일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래처럼 세상을 노래하고 있지만 결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녹녹치만은 않다.
이런들 어쩌랴 저런들 어찌하리
마음 하나 놓은 긴 밤 이불 없음 또 어떠리
그믐달 깊은 잠자리 깨워 본들 또 어짜랴
마음속에 뜬 만월 지운들 없어지랴
눈가림 아옹 일랑 아니 본 듯 흘리고
밤새워 펼친 니 내 꿈 은하수가 마다하든
네 안에 뜯어보면 나만 방긋 웃는 것을
아니 뜯고 헤집으니 달이 뜬들 어찌 아노
서산에 지는 태양이 네 품속을 더듬는다
팔공산 계단 섬섬 올라가는 미물들
천하좌우 살피더니 미운 마음 접어두고
돌 이고 갓바위 할배 웃기고 지랄이야
-<68> 전문
이 시처럼 “이런들 어쩌랴 저런들 어찌하리”라고 자조 그리고 포기나 체념, 그 미학만 쫒을 수는 없다. 독자가 시인에게 원하는 것은 구원의 메시지와 느낌이다. 현실적인 삶에 대한 초탈한 모습을 보기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밭을 넉넉하게 해주는 그 기쁨 혹은 풍요로움을 욕구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은 옛 것으로의 회귀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그것만을 즐기고 누릴 수만은 없다. 새로운 생각과 느낌의 패러다임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 지평을 단초를 시조 <107>에서 찾으면 어떨까? “삿된 마음 탈을 쓰면 삵쾡인지 알길 없고/갖은 아양 다 부리면 거짓을 어찌 알리/여보게 수건 있는가 삿된 거울 닦아보세”(<107> 전문)처럼 세상의 거짓을 밝히되 삿된 거울을 닦는 마음을 갖게 하는 삶. 그 삶의 방법을 불교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의 서두에서도 나는 김대현 시조의 선시 혹은 불교시적인 국면에 대해서 개진한 바 있다. 김대현 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세계와 다재다능한 예술적 자질, 그리고 이에 합당한 상상력은 분명 시서화에 있어서, 특히 문학에 있어서도 새로운 세계로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 다양함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세계의 지평을 나는 불교의 세계에서 찾았으면 한다. 사상의 깊이와 감정의 절제 미학, 그리고 종교적 상상력까지 나아가서는 삶의 방편의 제시에 이르기까지 불교적 상상력을 통해서 구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해낼 것으로 믿는다. 김대현 시에서 시조로 그의 관심이 전환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판단된다. 지금 그는 모색 중이다. 그리고 도전중이다. 크고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탐색하고 시도하는 중으로 알고 있다. 하나에로의 용맹 정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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