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5 20:17:32 조회 : 7         
44번 ●조선의 천재 방랑 시인, 김삿갓의 파란만장했던 여정 시리즈 (8/10)♣ 이름 : 송천 김영동

44번 ●조선의 천재 방랑 시인, 김삿갓의 파란만장했던 여정 시리즈 (8/10)♣

松泉 金永東

전라도(남도) 입성과 본격적인 파자 대결(인거산위선, 부부의 암호 대화를 파자로 맞받아침) 드디어 풍류의 고장 전라도, 즉 남도에 입성했다. 남도라면 예로부터 예향(藝鄕), 즉 예술의 고향이라 불리던 곳이죠? 맞습니다. 글 좀 읽는다는 선비들과 기생들이 특히 많았던 곳이다. 김삿갓은 이곳에서 자신의 전매특허인 파자(破字)를 무기로 수많은 전설을 남긴다. 파자라면 지난 시간 맛보기로 봤던 글자 쪼개기 퀴즈 말이다. 한자의 모양을 분해하거나 합쳐서 전혀 다른 뜻을 만들어내는 지적인 유희를 말한다. 전라도 일대의 거만한 선비들과 영리한 기생들을 이 파자로 굴복시켰던, 가장 잘 알려진 에피소드 세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다. 첫 번째 이야기는 글자 하나로 상대방의 위선을 찌른 파자라고. 어느 날 김삿갓이 산속 암자에 들렀을 때, 글 좀 읽었다는 선비 하나가 김삿갓의 남루한 행색을 비웃으며 이렇게 거드름을 피웠다. "자네 같은 거지가 어찌 감히 신선 같은 내가 머무는 이곳에 오느냐?" 그러자 김삿갓은 종이에 딱 두 줄을 적어 보여줬다. 人居山爲仙 (인거산위선) "사람이 산(山)에 사니 신선(仙)이요," 人居谷爲俗 (인거곡위속) "사람이 골짜기(谷)에 사니 속물(俗)이라." 뜻은 알겠는데, 이게 왜 파자인가? 바로 그 설명이 핵심이다. 신선 선(仙) 자를 뜯어보면, 왼편에 사람 인(人), 오른편에 뫼 산(山) 자가 나란히 붙어 있다. 즉 '사람이 산 옆에 있으면 신선이 된다.'는 거다. 속될 속(俗) 자는 사람 인(人) 옆에 골 곡(谷) 자가 붙은 거다. 김삿갓은 이 글자 구조를 파자로 써서 이렇게 말한 거다. "네가 산에 있다고 신선인 줄 아느냐? 마음이 세속의 골짜기에 있으면 넌 그저 속물일 뿐이다." 선비는 이 글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벌개졌다고 한다. 글자 구조 자체가 이미 그런 뜻을 담고 있었다. 파자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한자의 철학까지 꿰뚫는 기술이라는 게 느껴진다. 김삿갓이 하룻밤 신세를 지러 어느 집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그 집 부부가 나그네 앞에서 밥을 차려주기 싫었는지, 서로 파자로 암호 대화를 나눈다. 파자로 암호 대화를? 네. 먼저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묻는다. 人良卜一 (인량복일) 하오리까? 사람 인(人)과 어질 량(良)을 합치면 먹을 식(食)이 되고, 점 복(卜)과 한 일(一)을 합치면 윗 상(上)이 된다. 즉 "밥상을 올릴까요?"라는 뜻이다. 참고로 또 차(且)와 여덟 팔(八)을 합쳐 食具(식구), 즉 "밥을 차릴까요?"로 전하는 이본(異本)도 있다. 아, 인량을 합치면 食이 되고, 복일을 합치면 上이 되는 거다. 그러자 남편이 이렇게 답한다. 月月山山 (월월산산) 하거든. 달 월(月) 자 두 개를 합치면 벗 붕(朋) 자가 되고, 뫼 산(山) 자 두 개를 합치면 날 출(出) 자가 된다. 즉 "이 친구 나가거든 차려라"는 뜻이다. 나그네 앞에서 대놓고 "저 사람 나가면 밥 차려" 한 거잖아! 그런데 파자의 달인 김삿갓 앞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김삿갓은 즉시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마디를 날린다. 丁口竹夭 (정구죽요)로구나, 이 亞心土白 (아심토백)아! 이게 또 파자인가? 마지막까지 파자로 받아친 거다. 정(丁)과 구(口)를 합치면 옳을 가(可), 죽(竹)과 요(夭)를 합치면 웃을 소(笑). 즉 '가소롭다'는 뜻이다. 아(亞)와 심(心)을 합치면 악할 악(惡), 토(土)와 백(白)을 합치면 놈 자(者). 즉 '나쁜 놈'이라는 뜻이다. 결국 "가소롭구나, 이 나쁜 놈아!"라고 파자로 욕을 퍼붓고 나간 것이다. 암호로 무시했다가 암호로 욕을 얻어먹은 셈이다. 진짜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꼴이네. 그런데 일부 자료에는 김삿갓이 그냥 퇴장한 것이 아니라 부부가 뒤늦게 깨닫고 오히려 더 잘 대접했다는 결말로 전하는 버전도 있다. 어느 쪽이든 파자로 속이려다 파자로 당한 인색한 부부의 이야기라는 점은 같다. 두 번째는 김삿갓 시 중에서 리듬감이 가장 좋기로 소문난 시이다 전라도 일대에서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선견선이선(仙見仙而仙)이라는 시이다. 《대동기문(大東奇聞)》이라는 야사 문헌에 수록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인데, 역시 원문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고 여러 자료에서 공통으로 언급하는 출처임을 밝혀둔다. 신선 선(仙) 자 하나를 가지고 무려 여덟 번이나 반복하며 언어유희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이다. 한 글자를 여덟 번이나? 이 시는 두 가지 신선 선 자를 섞어 쓴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아는 신선 선(仙) 자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뜻이지만 모양이 살짝 다른 또 다른 신선 선(僊) 자이다. 귀로 들으면 모두 신선선이지만, 눈으로 보면 두 가지가 섞여 있는 거다. 들어보자.

仙見仙而仙 (선견선이선) "신선이 신선을 보니 신선이요,"

僊見僊而僊 (선견선이선) "또 신선이 신선을 보니 신선이로다."

仙僊見仙僊 (선선견선선) "신선과 신선이 신선과 신선을 보니,"

僊仙見僊仙 (선선견선선) "이 또한 신선과 신선이 //

신선과 신선을 보는 것이로다."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까닥이게 되네. 다 신선선인데 뜻이 다 통한다. 이 시의 묘미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는 거다. 산에 사는 선비나, 이 방랑 나그네나,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신선이 아니겠느냐, 하는 거다. 결국 "나 같은 나그네도 너희 같은 풍류객과 다를 바 없는 신선이다"라는 김삿갓의 자부심이 담긴 것이다. 그냥 말로 "나도 신선이다" 하면 건방져 보이는데, 이렇게 시로 만드니까 오히려 통쾌하게 느껴지네. 마지막 이야기는 김삿갓이 어느 양반을 아주 제대로 골탕 먹인 파자 시라고?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잔치 자리에서 집주인이 김삿갓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글자를 파자로 쪼개서 내게 교훈이 될 만한 시를 지으면 술을 한 통 주겠다." 그러자 김삿갓이 믿을 신(信) 자를 가지고 즉석에서 시를 짓는다. 믿을 신 자를 보면 왼쪽에 사람 인(人), 오른쪽에 말씀 언(言) 자가 붙어 있다. 즉 '사람의 말이 곧 믿음'이라는 뜻을 글자 구조 자체에 담고 있는 거다. 김삿갓은 이 구조를 파자로 써서 이런 시를 짓는다. 人言不信 (인언불신) "사람의 말이 믿음직하지 못하면," 何爲人言 (하위인언) "어찌 사람의 말이라 하겠는가." 信而無人 (신이무인) "믿음(信)에서 사람(人)을 빼버리면," 唯言而已 (유언이이) "그것은 그저 빈말일 뿐이로다." 한자를 쪼갰다가 합쳤다가 하면서 "말에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라는 일침을 날린 거다. 세 번째 줄, 신이무인, 즉 믿음에서 사람을 빼버리면, 이 부분이 가장 날카롭다. 믿을 신자에서 사람인을 빼면 말씀 언 자만 남잖아? 그게 그저 빈말이 된다는 거다. 술을 주겠다고 약조하고는 뜸을 들이던 주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약속을 지켜라!"라고 돌려 말한 거다. 결국 주인은 감탄하며 술뿐만 아니라 푸짐한 안주까지 내놓았다고 한다. 이 짧은 시 안에 파자도 있고 훈계도 있고 압박도 있다. 정말 다기능이다.

<주>

★대동기문(大東奇聞)은 조선 태조부터 고종 때까지의 역대 인물 500여 명의 전기와 야사, 일화 등을 모아 엮은 설화·인물 모음집이다. 1926년 학자 강효석(姜斅錫)이 찬집하여 간행하였다

★같은 그릇이라도 맑은 물을 담으면 생명을 살리고, / 꽃을 담으면 향기를 전하며, / 꿀을 담으면 달콤함을 나누고, / 약을 담으면 아픔을 치유한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 감사를 품으면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 사랑을 품으면 말이 따뜻해지며, / 겸손을 품으면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된다. / 반대로 불평과 미움, 욕심을 채우면 결국 가장 먼저 무거워지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이다. <끝>

★花有意而獨笑 (화유의이독소) : 꽃은 뜻이 있어 홀로 웃고,

★鳥無情而自歌 (조무정이자가) : 새는 정이 없어도 스스로 노래하네.

★落花有意隨流水(낙화유의수류수) : 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을 따르지만,

★流水無情戀落花(유수무정연낙화) : 흐르는 물은 무정하게(무심하게) 그 꽃을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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