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번 ●조선의 천재 방랑 시인, 김삿갓의 파란만장했던 여정 시리즈 (5/10)♣
松泉 金永東
함경도의 추위와 야박한 인심(함관령, 길주길주불길주-지명 풍자)
아름다운 금강산의 정기를 듬뿍 받은 김삿갓은 발걸음을 더 북쪽으로 돌린다. 바로 산세가 험하고 기후가 매서운 함경도(咸鏡道), 즉 북관(北關) 지방이다. 아, 함경도면 당시 유배지로도 많이 쓰이던 아주 추운 곳이잖아? 방랑객의 얇은 옷차림으로는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김삿갓이 함경남도 함주와 홍원을 잇는 험한 고개, 함관령(咸關嶺)을 넘을 때의 일이다. 때는 분명 4월, 즉 봄이었는데 고갯마루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있고 칼바람이 불었다. 이때 그 추위를 묘사한 시가 바로 <함관령>이라는 시이다.
이 시는 국어 교과서와 수많은 문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주 서정적인 작품이다.
함관령 시, 들어보자. <함관령(咸關嶺)>
四月咸關嶺 (사월함관령) "사월의 함관령 고개는"
北靑郡守寒 (북청군수한) "북청 군수도 추위에 덜덜 떨겠구나."
杜鵑今始發 (두견금시발) "진달래가 이제야 겨우 피기 시작했으니"
春亦上山難 (춘역상산난) "봄조차도 산이 높아 오르기 힘든가 보네" //
마지막 구절이 정말 예술이네. "봄조차도 산에 오르기 힘들어서 이제야 진달래가 핀다."니. 추위를 탓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섭리로 우아하게 포장했다. 그렇다, 춥다고 불평하는 대신, 계절인 '봄(春)'을 의인화해서 험한 산을 낑낑대며 올라오는 모습으로 그렸다. 전체 내용을 풀어보면 이렇다. "사월의 함관령 고개는 너무나 추워서, 북청 군수님도 추위에 떨 정도라네. 진달래꽃이 이제야 겨우 피기 시작했으니, 봄이라는 계절조차도 이 높은 산에
오르기 힘든가 보다." 김삿갓은 풍자뿐만 아니라 이런 순수 서정시에도 엄청난 천재성을 보인 인물이다. 두 번째 구절 '북청 군수도 춥다'는 표현이 재미있네. 북청은 함경도에서도
특히 추운 곳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북청 군수님도 떨 정도"라고 하면, 그 추위가 얼마나 극심한지 조선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했을 거다. 요즘으로 치면 "시베리아도 이보다는 따뜻하겠다." 정도의 과장법이다. 춥고 배고픈 건시로 달랜다. 쳐도, 잠은 어디서 자야 하나
함경도 인심은 어땠나. 불행히도 함경도의 날씨만큼이나 인심도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김삿갓이 단천을 지나 길주(吉州) 땅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길주에는 허씨(許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있었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과객(過客), 즉 나그네를 재워주는 집이 단 한 곳도 없는 거다. 마을 전체가 문전박대를 한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난 김삿갓은 길주를 떠나 바로 위쪽 동네인 명천(明川)으로 간다. 명천은 우리가 먹는 '명태(明太)'의 어원이 된 곳일 정도로 고기가 썩어나는 동네였다. 그런데 이 명천의 어전(漁佃), 즉 어촌 마을에서도 생선 꼬리 하나 못 얻어먹고 푸대접을 받는다. 아휴. 완전 '과객의 지옥'이네. 가만히 있을 김삿갓이 아니다. 어떤 시로 갚아줬나? 네, 이 에피소드는 역사적인 '지명 디스(Diss) 시'로 유명하다. 지명의 한자 뜻을 그대로 가져와서 정반대의 현실을 꼬집는 기막힌 언어유희를 선보인다.
吉州吉州不吉州 (길주길주불길주) "길주 길주 하건만, 이름처럼 길(吉)한 고을이 아니고" 許可許可不許可 (허가허가불허가) "허가(許哥) 허가 하건만, 하룻밤 잠자리도 허락(許)하지 않네."
明川明川人不明 (명천명천인불명) "명천 명천 하건만, 사람들의 인심은 밝지(明) 못하고" 漁佃漁佃食無魚 (어전어전식무어) "어전 어전 하건만, 내 밥상에 물고기(魚) 한 마리 없구나!" // 와, 이건 진짜 힙합(Hip-hop) 펀치라인 아닌가? 마을 이름값 좀 하라고 제대로 팩트 폭행을 했네! 전체 내용을 다시 풀어보면 이렇다. "길주야 길주야, 네 이름이 길할 길 자인데, 전혀 길하지 않구나! 허 씨야 허 씨야, 네 성이 허락할 허 자인데, 나그네 하룻밤 재워주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구나! 명천아 명천아, 네 이름이 밝을 명자인데, 사람들 인심은 하나도 밝지 않구나! 어전이야 어전이야, 네 이름이 물고기 어 자인데, 내 밥상에는 물고기 한 마리도 없구나!" 지명 하나하나를 다 비꼬았네. 마을 이름과 사람들의 성씨가 가진 긍정적인 뜻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그들의 위선과 야박함을 통렬하게 조롱한 것이다. 특히 '허가 허가 불허가' 부분은 같은 소리를 반복하면서도 의미는 완전히 뒤집는, 정말 천재적인 언어유희이다. 김삿갓은 지명을 이용한 풍자를 자주 쓴 건가 김삿갓의 대표적인 기법 중 하나이다. 지명이나 인명의 한자 뜻을 활용해서 현실과 대비시키는 거다. 이번 시에서는: 길주(吉州)의 '길(吉)'은 '길할 길'인데 실제로는 불길하고, 허씨(許氏)의 '허(許)'는 '허락할 허'인데 실제로는 허락하지 않고, 명천(明川)의 '명(明)'은 '밝을 명'인데 실제로는 어둡고, 어전(漁佃)의 '어(魚)'는 '물고기 어'인데 실제로는 물고기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이름과 실제의 괴리를 통렬하게 비판한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강남인데 강도 없고 남쪽도 아니다' 뭐 이런 건가? 아주 좋은 예시이다! 정확히 그런 방식의 풍자다. 김삿갓은 이런 언어유희를 통해 단순히 웃음만 주는 게 아니라, 이름과 실제가 다른 위선적인 사회를 비판했던 것이다. 시를 듣기만 해도 속이 다 시원해지네. 아마 길주 허씨들과 명천 사람들은 이 시가 퍼진 뒤에 얼굴 좀 붉혔겠다. 이 시는 당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함경도의 매서운 칼바람을 꼬집는 통쾌한 이야기가 되었다. 비록 몸은 얼고 배는 고팠지만, 김삿갓의 붓끝은 함경도의 매서운 칼바람보다 더 날카로웠다. 길 위에서 만나는 고난을 언제나 유쾌한 시로 베어 넘기는 김삿갓! 그의 방랑길을 따라가다 보니, 삶의 여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함경도에서 쓴맛을 제대로 본 김삿갓은, 이제 발길을 돌려 조선의 중심이자 잘난 양반들이 모여 있는 한양(漢陽), 즉 서울과 기호(畿湖)지방쪽으로 남하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수도권 진출인가? 가짜 선비들을 혼쭐내는 진짜 천재의 활약이 기대된다.
★함관령(咸關嶺)은 함경남도 함주군과 홍원군 사이에 위치한 높이 450m의 고개이다. 홍원군에서 함흥시(함경도의 중심지)로 들어오는 군사적, 교통적 요충지이자 험준한 관문 역할을 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호(畿湖)지방은 수도권인 경기 지방과 충청권인 호서 지방을 통칭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지역 구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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