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천재 방랑 시인, 김삿갓의 파란만장했던 여정 시리즈 (3/10)●♣
松泉 金永東
함경도 안변의 설움: 가난한 과객의 비애와 (이십수하)
지난 시간, 삿갓을 쓰고 비장하게 집을 떠난 김삿갓. 하지만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양반 김병연'은 사라지고 '거지 김삿갓'의 현실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천재 시인이라도 당장 오늘 밤 잘 곳과 먹을 밥이 없으면 그저 초라한 나그네일 뿐이다. 집을 떠난 그는 강원도 산골을 지나 금강산을 구경하고, 관동 지방을 거쳐 북쪽 함경도(咸鏡道)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함경도, 거기는 산세도 험하고 당시 변방 지역이라 인심도 거칠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에 지어진 시들을 보면, 배고픔과 푸대접에 대한 설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김삿갓은 그 비참함을 눈물이 아닌 '기발한 언어유희(言語遊戱)', 즉 말장난으로 승화시킨다. 그가 방랑 초기, 야박한 세상에 날린 유쾌한 한 방을 만나보겠다. 배고픈데 밥도 안 주면 화가 날 텐데, 어떻게 유쾌하게 풀었나? 방랑 초기,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 지역을 지날 때로 추정된다. 해는 저무는데 밥 한 술 얻어먹으려다 쫓겨난 김삿갓이 마당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즉석에서 읊은 시가 있다. 제목은 <이십수하(二十樹下)>, 즉 '스무 나무 아래서'이다. 이 시는 김삿갓과 관련된 여러 시집과 설화집에 수록되어 전승되어 온 작품이다. 구전 과정에서 일부 표현이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핵심 내용은 일치한다.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스무 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四十家中五十食 (사십가중오십식) "마흔 집중에, 쉰밥을 얻어먹네."
人間七十豈有事 (인간칠십기유사) "인간 세상에 일흔 일이 어찌 있으랴"
不如歸家三十食 (불여귀가삼십식) "집에 돌아가 서른 밥을 먹느니만 못하네." //
가만히 들어보니 숫자가 우리말이랑 비슷하다? '삼십객(三十客)'은 '서른'이니까 '서러운 나그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 구절의 이십(二十), 즉 '스무'는 숫자 언어유희가 아니다. 이십수(二十樹)는 실제로 존재하는 나무 이름, 바로 '스무나무'이다. 느릅나무 과에 속하는 나무인데, 옛말로 '스무'가 이십을 뜻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첫 구절은 "스무나무아래서"라는 뜻이고, 언어유희는 삼십부터 시작된다. 하나씩 풀어볼까? 이십수(二十樹), 스무나무는 → 실제 나무 이름, 삼십(三十), 서른은 → '서러운' 사십(四十), 마흔은 → '망할' 오십(五十), 쉰은 → '상해서 쉰', 칠십(七十), 일흔은 → '이런' 아, 이십만 예외였다! 그럼 전체 내용을 다시 한 번 쉽게 정리해 보자. 전체 내용을 풀어보면 이렇다.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집구석에서 상한 쉰밥을 얻어먹네. 인간 세상에 이런 일이 어찌 있으랴!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이라도 먹느니만 못하구나.” 와. "망할 집구석에서 쉰밥을 주다니, 이런 일이 있나!" 이걸 점잖은 한자로 표현했다니 정말 천재적이다. 욕을 하는 건지 시를 쓰는 건지 모르겠다. 바로 그게 김삿갓 시의 매력이다. 한자로 쓰면 그럴듯한 시인데, 우리말 소리로 읽으면 욕이 되는 거다. 이런 언어유희를 '쌍관(雙關)'이라고 하는데, 김삿갓은 이 기법의 달인이었다. 배고프고 서러운 처지를 한탄만 하지 않고, 이렇게 재치로 승화시킨 것이다. 숫자로 욕을 한 것도 재미있는데, 혹시 더 기막힌 에피소드는 없나? 있다. 이번에는 김삿갓이 함경도나 강원도의 한 부잣집에 들렀을 때 일이다. 주인이 나그네 행색을 보고 아주 낡은 개다리소반, 즉 작은 밥상에 쌀알은 거의 없는 멀건 죽 한 그릇을 내왔다. 개다리소반이다? 그게 뭔가? 개다리소반은 다리가 아주 짧고 작은 밥상을 말한다. 보통 혼자 먹거나 대접이 변변치 않을 때 내놓는 소반이다. 더군다나 그 위에 올라온 죽은 쌀알은 거의 없고 물만 가득했다고 한다. 배고픈 사람한테 물 같은 죽이라니, 너무하네. 그런데 김삿갓은 화를 내는 대신, 그 죽 그릇을 들여다보며 아주 우아하게 시를 한 수 읊는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런 시였다고 한다.
四脚松盤粥一器 (사각송반죽일기) "네 다리 소반 위에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徘徊 (천광운영공배회) "하늘의 빛과 구름 그림자가 그 안에 함께 감도는구나."
主人莫道無顔色 (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이여, 체면이 없다 말하지 마소"
吾愛靑山倒水來 (오애청산도수래) "나는 청산이 물속에 거꾸로 비쳐 오는 것을 사랑하네."/
와. 표현이 정말 예술이네. 죽이 너무 묽어서 거울처럼 하늘과 구름이 비친다는 거잖아? 그런데 이걸 "청산이 물에 비쳐서 좋다"고 하다니, 비꼬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맞다. 그런데 이 시가 더 대단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두 번째 줄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 즉 '하늘의 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감돈다.' 때문이다. 혹시 이 구절,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느냐? 글쎄, 아주 유명한 말인가? 이건 성리학의 대가 주자(朱子)가 쓴 아주 유명한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 나오는 구절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원래 주자는 '학문의 깊은 깨달음'을 맑은 연못에 비친 하늘에 비유했는데, 김삿갓은 이걸 '건더기 없는 맹물 죽'에 갖다 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죽이 어찌나 맑은지 주자 선생의 깨달음을 얻을 정도다!"라고 놀린 것이다. 잠깐 주자의 원시(原詩)를 먼저 들어보자.
半畝方塘一鑑開 (반묘방당일감개) "반 이랑 네모난 연못 한 거울처럼 열려 있는데"
天光雲影共徘徊 (천광운영공배회) "하늘의 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감돈다."
問渠那得淸如許 (문거나득청여허)"묻노니 어찌 이리 맑은고."
爲有源頭活水來 (위유원두활수래) "그것은 근원에서 생생한 물이 흘러오기 때문이라네." //이 시는 무슨 뜻인가? 주자는 이 시에서 연못의 물이 맑은 이유를 '근원에서 끊임없이 새 물이 흘러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건 학문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야 맑고 깊어진다는 뜻이다. 성리학에서는 아주 유명한 비유이다. 그런 고상한 시를 멀건 죽에 갖다 붙였다니! 바로 그것이다. 김삿갓은 유식한 척하면서 주인의 인색함을 통렬하게 조롱한 것이다. 전체 내용을 다시 풀어보면 이렇다. "네 다리 소반 위에 죽 한 그릇이 놓였는데,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그 안에 함께 감돈다. 주인이여, 체면 없다고 말하지 마소. 나는 청산이 물에 거꾸로 비치는 이 풍경을 사랑하네." '체면 없다 말하지 마라'는 것도 반어법이다. "체면 없다 하지 마라"는 사실 "너 정말 체면도 없냐?"라고 묻는 거다. 주인은 아마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을 것이다. 성리학의 성인 주자를 끌어다가 "당신네 죽은 깨달음을 얻을 만큼 맑다"라고 비꼰 건데, 이보다 더 고급스러운 풍자가 어디 있겠는가? 김삿갓이 주자의 시를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이게 바로 김삿갓의 진짜 실력이다. 그는 단순히 욕만 잘하는 게 아니라, 경전과 고전을 꿰뚫고 있었던 진짜 문인이었다. 주자의 <관서유감>은 조선시대 선비라면 누구나 암송하던 시였으니, 그 자리에 있던 주인이나 다른 사람들도 즉시 알아챘을 거다. 알아챘다면 더 창피했겠네. 그렇다. "아, 저 나그네가 주자 선생 시를 인용하는구나" 하다가, "어? 그걸 우리 죽에 갖다 붙였네?"라고 깨닫는 순간의 그 당황스러움이란! 이게 바로 김삿갓 풍자의 백미이다. 직접적인 욕설이 아니라, 고전을 패러디해서 품격 있게 조롱하는 거다. 요즘으로 치면 명언을 패러디한 밈 같은 것이다. 아주 좋은 비유다! 요즘 인터넷에서 명언이나 유명한 대사를 비틀어서 웃음을 주는 것처럼, 김삿갓도 주자의 명시를 패러디해서 풍자한 거다. 이게 바로 김삿갓이 단순한 방랑 시인이 아니라 '천재 언어 예술가'인 이유이다. 배고픔과 푸대접조차 시로 요리해 먹었던 김삿갓. 숫자로 욕하고, 주자의 시를 패러디 하고. 그의 언어 감각이 정말 놀랍다. 두 시를 통해 우리는 김삿갓의 두 가지 얼굴을 봤다. 하나는 서민적인 '쌍관법(雙關法)'으로 속 시원하게 욕하는 모습, 다른 하나는 고전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지식인들을 조롱하는 엘리트 문인의 모습이다. 이렇게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쓴맛을 본 김삿갓, 다음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조선 최고의 명승지, 금강산(金剛山)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거지꼴을 잠시 잊고, 천재 시인으로서의 예술혼을 불태우게 된다. <끝>
★스무나무는 20리마다 있는 나무라고 해서 '스무나무'라고 불렀던 것이 '시무나무'라는 이름이 되었다. 중국과 일본 몽골 그리고 한국에 분포한다. 크기는 높이 20m까지 자라고, 줄기는 직립하여 원뿔모양의 수형을 이루고, 가지에 다시 큰 가시처럼 생긴 가지가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개다리소반은 상다리가 개의 다리 모양처럼 안으로 굽어 있는 작은 밥상(소반)을 뜻한다. 소박하고 튼튼하여 조선시대 일반 가정에서 밥상, 다과상, 책상 등 다양한 용도로 널리 사용했던 좌식 가구이다.
★관서유감(觀書有感)은 중국 남송 시대의 대학자 주희(朱熹)가 책을 읽고 느낀 감흥을 표현한 연작시이다.
★쌍관법(雙關法)은 문학이나 한문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표현 및 구성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문장이나 시의 처음과 끝에 같은 형태를 반복하여 수미상관 법으로 쓰이지만, 한문학의 대구법에서도 독특한 형태로 활용된다. <끝>
♣ 가렴주구를 폭로한 시도 썼다.
宣化堂上宣火黨 선화당상선화당. / 선화당 위 베풀어지는 화적의 무리
樂民樓下落民淚 낙민루하낙민루 / 낙민루 아래 떨어지는 백성의 눈물
咸鏡道民咸驚逃 함경도민함경도. /함경도 백성 모두 놀라 달아나는데
趙冀永家兆豈永 조기영가조기영. / 조기영 놈의 집안 어찌 오래가리오?
당대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1781~1867) 의 가렴주구를 폭로한 시로 선화당, 낙민루, 함경도, 조기영의 한자 훈을 바꿔서 기가 막힌 시를 지었다. 조기영은 풍양 조씨로 대사헌, 예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헌종 7년(1841년) 함경도에 관찰사로 부임했다. 함경도에 파견되기 전에는 평안남도 성천 부사, 충청도 관찰사를 맡았는데, 이 당시만 해도 선정을 베풀었던 유능한 목민관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당시 풍양 조씨 역시 세도가였으니만큼, 실상과는 달리 조기영에게 유리하게 왜곡하여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가렴주구(苛斂誅求)는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백성의 재물을 무리하게 빼앗는 것을 뜻하는 사자성어이다 탐관오리의 지나친 수탈과 횡포를 비판할 때 주로 사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