寶白堂先生學術發表會
0, 일시 ; 2013, 5, 11, 10 ; 30
0, 장소 ; 안동회관 ( 안동시 옥정동)
0, 참석 ; 150명 정도
- 묵계서원 청분계 회원 90명
- 동양예학회 회원 30명
- 보백당 선생 후손 30명
0, 발표회내용
- 동양예학회 대표(김시황 경북대 명예교수)로부터 학술지 “보백당 특집”을 묵계서원 청분계 대표 (유영하 충효당종손)에게 전달
- 인 사, 축 사
- 학술 발표
1부. 보백당 김계행 선생의 학문과 문학.
- 박 명 숙 (경상대 )
2부. 영남사림들, 보백당을 추모하다.
- 최 은 주 (한국국학진흥원 )
3부, 보백당 김계행선생의 생애와 유학사상.
- 김 시 황 (경북대 명예교수) 0, 마무리 인사 ; 김 주 현 보백당 선생 19대 종손
0, 오 찬
* 寶白堂 金係行 (1431~1517)- 本貫 安東 字는 取
斯, 寶 白堂은 호이다, 태사공 金宣平의 10세손, 조선
조 성종 연산조에 걸쳐 6조의 관직을 거처 성균관 대
사성과 홍 문관부제학, 대사간, 대사헌등 3사의 청요
직을 역임하 고 거유 점필재 김종직과 교유 영남 유림
을 이끌었다, 연산군의 폭정을 바로 잡기위하여 여러
차례 간 하였으 나 시정되지 않자 사직하는등 충간을
서슴지 않았으며, 무오사화등에 연루되어 수차례 옥
고를 치루기도 하였으 며, 후세인의 청백리로 추앙받
고 있다. 1859년 이조판 서 양관대제학에 추증, 定獻
公이라는 시호와 함께 不祧 典(불천위)의 칙명을 내
렸다.
우리집에는 보물은 없다, 보물이라면 청백뿐이다 (吾
家無寶物 寶物惟淸白)라는 시구는 선생의 평소 생활
철학이며 후손에 대한 유훈이다, 81세 헌수시는 공직
에 있는 내외 자손들에게 持身謹愼 待人忠厚(몸가짐
을 조 심 하고 사람을 대할때는 정성을 다하라)하라
하시고, 임종시 청백을 가법으로 전하고 공근을 대대
로 이어 가 며 효우로 돈목(家傳淸白 世守恭謹 孝友敦
睦)하라 하시 고 상재는 검소하고 경건함에 두고, 經
筵에 있으며 仁君 을 돕지도 時弊를 구하지도 못하였
으니 무덤에는 이름 이나 써서 표시하고 남에게 거짓
을 찬미 하는 비문을 청하지 못 하게 하는등 충절과
청렴으로 일관 하였다. 안동 묵계서원에 凝 溪 玉 沽
선생과 함께 배향 되었다.
* 黙溪書院 淸芬稧(대표 李恒稙)
묵계서원에 배향된 凝溪 玉 沽( 세종조 사헌부 장령
청 백리)선생과 寶白堂 金係行선생의 충절과 청백 정
신을 기리기 위하여 지역 유림들에 의하여 조직된 儒
稧로 1995년 결성 되어 회원은 95명이며 매년 5월 11
일에 총회를 개최하여 선현들의 유지를 받들고 상호
간의 친 목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