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亡家亡 血淚之恨[국망가망 혈루지한]
국망가망 혈루지한이라고 제가 정한 본인 가족사의 단적인 표현입니다.
안동시 남후면 검암2리 통칭 횡계에 대대로 살아왔었고 앞 미천에 보 막아서 하천부지 개답하여 거부가 되리라 기대하며 가장 하류인 낙수인접지에 보 막아서 홍수가 와서 모두 사라지고 두 번째로 중류에 설치하였고 동일하게 떠내려가서 마지막 보 막기사업이 현재 보 보다 15미터 정도 아래에 설치하여 성공했어요[현재 상황: 다리 공사로 보 설치했던 목재가 공사업체에서 처리(멸실)] 하지만 왜정이 현재 자리에 남포 놓고 신식 보 설치로 인하여
구식 보 설치공사에 투자된 현시세로 500억[畓 10,000평, 천리마 5필, 소 등 동물, 패물 다수] 사재가 사라져서 망하여 이사할 수밖에 없었어요
신뢰보호의원칙 위반이니 당연히 제 집에 돌려줘야 온당한 것이 아닌가요?
왜 왜정이 미리 우리 수리조합이 보설치할 계획이니 공사하지 말라고 왜 한마디 말없다가 성공하자 바로 상부에 보 설치한 행위로 왜정이 우리 집에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생각되고 박통이 개인 대일청구권 폐쇄하고 국가가 가져갔기에 국가가 아직도 배상해야 하지 않나요?
화수회에 계속 부탁만 합니다만 이 엄청난 손해에 대한 배상방법, 비문 법조인 통하여 방법 알려주시면 고맙겠어요
---만약 거금을 회수하게 된다면 백씨를 비롯한 저희 형제 자매들과 수의하여 배상금의 상당금액을 학원설립비로 내놓아 제가
卑門[비문]의 자제를 대상으로 행정고시, 7급, 9급 공무원반을 일반 수강료의 반값[장학금의 명목]으로 전국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리고卑門[비문] 소양고사 공부 수강생인 공무원에게는 무상으로 교육할 계획임을 첨언합니다.
앞으로 이 계획은 원대한 계획의 일환이 될 것입니다.
또 조모님[權容弼] 단기4227년 3월 9일생 친정[大邱市 甲富 父 權致鉉]에 대하여 아랫대 소식 알려 주시면 고맙겠어요
풍남면 어담리에 이사 가셨다가 우리집안 문중에 실망하시고 의성에 이사 가시게 되심, 이리하여 점곡 사촌에 구한 방이 단칸방이라서 자부인 할머닐[權容弼] 친정[大邱市, 甲富 父 權致鉉]에 돌아가게 하고 낯설고 무연고 지역[의성]에 가시다가 의성과 안동 경계에서 안동부사[富자業자(漢)]셨던 증조부께서 쉬시다가 일어나서 땅에 발이 붙어 떨어지지 않으셔서 건너편에 절이 있어 도움 요청하니 불제자가 되겠다고 맹세하면 떨어진다기에 맹세하고 머리 깎고 바로 불제자가 되어서 부처님 가피로 가장이 사라지고 동문안댁 안동부사 사모님[權 여사]이 가장이 되어
이제 안동김가가 망했다고 일갈하시고 자식 셋과 손자[당시 6세 필자의 선친] 하나 데리고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한실에 도착하여 새로운 고생이 시작되고 열심히 살고 어머님의 베짜기와 선친의 농사의 성공으로 토지 60마지기를 확보하여 잘 사니까 산주는 의성 김이요, 관리인은 상락김[자칭 선안동 김]의 산에 모신 증조모님[동문안댁] 산소를 이장하라고 하고 점곡파출소에 다가 민원을 제기하고 괴롭게 하므로 의성읍에 거주하시던 종조부께 알리니 종조부께서 당시 경찰국장이시던 노태우 대통령 빙장어른 정자한자 아제임을 찾아뵙고 사정을 설명하니 당장 실태파악하여 조치하라는 엄명이 내려 점곡면 개소 이래 경찰 백차가 5대인지 7대인지 전무후무한 숫자의 경찰들이 현지 조사 하여 조치하였는 데 상락김 문중원들이 너는 어애 그클 빽이 좋노하면서 2인~3인 1조로 집근처 길목을 지켜 애를 먹이므로 할 수 없어 좋은 땅은 팔고 나쁜 곳은 무상으로 부쳐 먹으라고 주고 의성으로 나오셔서 의성 철도청 선로반 곡군이 되어 힘들게 살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