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번●조선의 천재 방랑 시인, 김삿갓의 파란만장했던 여정 시리즈 (7/10)♣
松泉 金永東
★첫사랑 '가련'과의 로맨스와 파자의 서막(가련기시, 가련의 무덤 앞에서 쓴 시)
김삿갓의 발길이 충청도와 전라도라는 남쪽 들판에 닿아 본격적인 염문을 뿌리기 전, 그의 가슴을 먼저 적신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함경도에서 만난 여인, 가련(可憐)과의 만남이다. 아, 남쪽의 풍류 세계로 넘어가기 전에, 그의 방랑 인생에서 유일하게 3년 가까이 머물게 했던 첫사랑 같은 존재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가련과의 만남에서 보여준 놀라운 언어유희가 있었기에, 훗날 남쪽 지방에서 수많은 여인과 선비들을 홀린 파자 시의 전설이 탄생할 수 있었거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김삿갓이 금강산을 유람하고 내려오던 길에 불영암이라는 암자에서 공허(空虛)라는 스님을 만났다. 두 사람이 시로 의기투합하여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님이 떠나는 김삿갓에게 이렇게 귀띔을 한다. "함흥에 가거든 가련이라는 기생을 꼭 만나보시게." 스님이 기생을 소개해 준다는 게 재미있네. 더 놀라운 건 다음 일이다. 안변 땅을 지나다가 한 노파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는데, 이번에도 "함흥에 가거든 가련을 꼭 만나보라"는 말을 똑같이 듣는다. 두 번이나 같은 이름을 들은 김삿갓이 함흥으로 발걸음을 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허 스님과 노파가 바로 가련의 부모였다고 전해진다. 아, 부모님이 먼저 나서서 사위 될 사람을 불러들인 셈이구나! 가련이 얼마나 특별한 여인이었으면 부모가 그런 방식으로 인연을 만들었을까. 마침내 함흥에 도착한 김삿갓이 가련의 방에 들었을 때, 그녀가 선비님의 성씨를 묻자 김삿갓은 직접 대답하는 대신 기발한 파자(破字) 퀴즈를 낸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종이에 글자를 적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성은 사람 인(人), 한 일(一) 밑에 들 입(入)이 있고, 그 아래 임금 왕(王)이 있으며, 양옆에 점이 두 개 찍힌 글자라네." 잠시 생각하다가. 사람 인(人), 한 일(一), 들 입(入), 임금 왕(王). 합치면 쇠 금(金) 자가 되네. 바로 이게 파자(破字)이다. 한자를 분해해서 수수께끼처럼 내는 거다. 가련은 이 퀴즈를 단번에 맞히고는 "역시 범상치 않은 선비님이시군"라며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성씨 하나로 여심을 사로잡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인 가련을 가지고도 아주 유명한 시를 남겼다 바로 가련기시(可憐妓詩), 즉 기생 가련에게 바치는 시이다. 가련이라는 이름에 담긴 두 가지 뜻, 즉 사랑스럽다와 가엾다를 교묘하게 섞은 작품으로, 여러 문헌에 공통으로 수록된 대표적인 시이다.
可憐行色可憐身 (가련행색가련신)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이 몸이"
可憐門前訪可憐 (가련문전방가련)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可憐此意傳可憐 (가련차의전가련)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可憐能知可憐心 (가련능지가련심) "가련도 능히 가련한 이 마음 알아주겠지" //
한 줄에 가련이 두 번씩인데, 들을 때마다 뜻이 바뀌니까 리듬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첫 줄,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이 몸"이라니, 자기 자신을 가련하다고 먼저 노래한 거네. 첫 줄이 핵심이다. 삿갓을 쓴 초라한 나그네가 "나는 이런 가련한 몰골을 하고 있는 가련한 사람이오." 하고 먼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뒤이어 "그런 내가 당신 가련을 찾아왔고,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 달라."는 구조이다. 자기 비하와 구애가 동시에 담긴 절묘한 첫 줄이다. 그러니 가련이 마음을 열 수밖에 없었겠네. 이 시에 감동한 가련은 김삿갓과 무려 3년 가까이 함께 지내며 지극정성으로 그를 보필한다. 3년이나 살았다면 정착할 법도 한데, 왜 결국 떠난 건가? 그게 바로 김삿갓의 운명이다. 스스로를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여겼기에, 한곳에 머물러 행복해지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한 계절만 돌고 오겠다."며 붙잡는 가련의 손을 뿌리치고 떠나면서 시 한 수를 남긴다.
可憐門前別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可憐行客尤可憐 (가련행객우가련)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可憐莫惜可憐去 (가련막석가련거)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불망귀가련) "가련을 잊지 않고 반드시 가련에게 돌아오리니" //
끝까지 가련이라는 단어로 슬픔을 노래했네요. 그런데. 실제로 돌아왔나? 그게 이 이야기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이다. 한 계절이라 했지만 김삿갓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고, 훗날 다시 함흥으로 돌아왔을 때 가련은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김삿갓을 기다리다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가련의 무덤 앞에서도 시를 남겼다. 다행히 그 시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는 가련기시나 이별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어떤 점이 다른가? 이 시에는 '가련(可憐)'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많은 언어유희도, 그 재치도 모두 사라졌다. 그저 담담하고 처연한 슬픔만 남아 있다.
一別從後豈堪忘 (일별종후기감망) "헤어진 뒤 어찌 잊었을까마는"
汝骨爲粉我旨霜 (여골위분아지상) "그대는 이미 백골이 되었고 나는 백발이 되었구나."
鸞鏡影寒春寂寂 (난경영한춘적적) "거울 속 내 몰골 처량한데 봄마저 쓸쓸하고"
風蕭音斷月茫茫 (풍소음단월망망) "바람 소리만 소소하고 그대 목소리 들을 길 없는데 달빛만이 망망하구나." //
두 번째 줄이 정말 가슴을 친다. "그대는 백골, 나는 백발." 이 한 줄에 두 사람의 엇갈린 세월이 모두 담겨 있다. 바로 그 대구(對句)가 이 시의 핵심이다. 너의 뼈는 가루가 되었고, 나의 머리는 서리가 되었다는 뜻이다. 죽은 자와 산 자를 단 두 어절로 갈라놓은 거다. 평생 언어를 갖고 놀았던 그가, 마지막엔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말로 슬픔을 토해낸 거다. 마지막 구절, "바람 소리만 소소하고 달빛만이 망망하다"는 것도 참 쓸쓸하네. 네. 바람 소리는 들리는데 가련의 목소리는 끊겼고, 달빛은 여전히 밝은데 가련은 없다는 거다. 이 시를 쓸 때 김삿갓은 이미 중년이었다. 평생 남을 비웃고 세상을 풍자했던 그가, 딱 한 사람 앞에서 만큼은 무장해제가 된 거다. 사랑을 유희로 풀면서도 그 속엔 짙은 고독이 깔려 있어서 더 마음이 아프다. 가련과의 시간은 김삿갓에게 가장 따뜻한 휴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그네의 본성은 그를 다시 길 위로 이끌었다. 이제 그는 가련에게서 배운 사랑과 더 날카로워진 파자 실력을 갖추고, 드디어 충청도와 전라도로 내려간다. 이제 본격적으로 남도의 풍류객들과 기생들, 그리고 거만한 양반들과 벌이는 파자 대결이 시작되는 거다.
★금강산 불영암의 공허(空虛) 스님은 뛰어난 시재(詩才)를 갖춘 선승으로, 당대 문사들과 교류하며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읊은 여러 대구시(對句詩)와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파자(破字)는 글자를 깨뜨린다.’는 뜻으로, 한자의 획을 풀어서 나누거나(분해) 다른 글자와 합치는 문자 유희를 의미한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 아픔을 지나야 성숙해지고, / 실패를 겪어야 지혜가 생기며,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타인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다. / 지금의 어려움도 언젠가는 당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소중한 과정이 될 것이다. / ★인생은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선택이다. / 따뜻한 사람 곁에는 따뜻한 사람이 모이고, 신뢰를 주는 사람 곁에는 믿음이 쌓이며, 배려하는 사람 곁에는 오래가는 인연이 남는다. / 오늘 내가 건네는 작은 친절하나가 내일의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간다. / 마음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향기가 달라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