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05 10:45:49 조회 : 4915         
벽상공신 등 이름 : 金相漢
*벽상공신(naver백과사전에서)이라는 호칭은 《고려사》 〈세가(世家)〉 태조 34년조에 처음 나타난다. 936년(태조 19)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 940년 신흥사(新興寺)를 중수하고 이곳에 공신당(功臣堂)을 세우면서 공신당의 동서 벽에 삼한공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벽에 그린 삼한공신이라 하여 이들을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부르는데, 여기서 벽상공신이 유래했다. 이후 벽상공신 칭호는 고려시대 전체에 걸쳐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명종이 무신난의 주동자들에게 내린 예 외에는 없다.

공신당에 그려진 삼한벽상공신은 고려의 개국공신 가운데서도 큰 공을 세운 인물들로 홍유(洪儒:殷悅),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유금필(庾黔弼), 김선궁(金宣弓), 이총언(李忿言),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윤신달(尹莘達), 최준옹(崔俊邕), 문다성(文多省), 이능희(李能希), 이도(李棹), 허선문(許宣文), 구존유(具存裕), 원극유(元克猷), 금용식(琴容式), 김훤술(金萱術), 한란(韓蘭), 강여청(姜餘淸), 손긍훈(孫兢訓), 방계홍(房係弘), 나총례(羅聰禮), 이희목(李希穆), 염형명(廉邢明), 최필달(崔必達), 김홍술(金弘述), 김락(金樂) 등이다.

또 무신 집권 때 벽상공신 칭호가 내린 인물은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이고(李高) 3인이다. 이들 3인이 중심이 되어 1170년(의종 24) 이른바 정중부의 난을 일으킨 뒤, 사흘 만에 의종을 거제도로 내쫓고 의종의 동생 호(晧)를 왕으로 추대하였는데, 이가 바로 명종이다. 벽상공신은 명종이 즉위하면서 이들 3인의 초상을 그려 조정의 벽에 붙인 데서 연유한다.

* 기사환국 : 숙종15년 장희빈 소생의 아들로 원자를 삼으려는 숙종에 반대한 송시열 등 서인이 장희빈의 편을 든 남인에 의해 유배되고, 정권이 서인의 손에서 남인에게 넘어간 일이다. 송시열이 제주도에서 사사되고 金壽興이 유배되었다가 사사되다. 김수흥의 아우 金壽恒도 기사환국때 진도에서 賜死되었다.

*갑술옥사 : 숙종이 민비를 복위시키고 왕비가 되었던 장소의를 희빈으로 복귀시켰다. 남인들은 사사 또는 유배되고, 죽은 송시열, 김수항등에게는 작위를 주었다. 이후 소론이 득세하여 노소(老少)의 쟁론이 일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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